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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깟 공놀이가 뭐라고[2030 세상/도진수]

입력 | 2019-10-29 03:00:00


도진수 청백 공동법률사무소 변호사

너 ‘마이너’한 취미를 가졌구나? 언제 들어도 묘하게 기분 좋은 말이다. 나의 정체성과 타인의 경계에 획을 긋고 있지만 마니아에는 속하지 않는, 그 어떤 중간 지점에 잘 안착해서 살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나는 마이너한 취미를 몇 개 가지고 있는데 그중 가장 오래된 것은 바로 축구 경기 관람이다. 엥? 손흥민이 TV만 틀면 나오는데 그게 무슨 마이너한 취미냐고? 난 K리그 팬이고, 그중에서도 평균 관중 5971명(올해 10월 6일 기준)에 불과한 성남 FC 팬이다. 만으로 10년이고, 햇수로는 11년 됐다.

‘리즈 시절’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았는가. 대개 외모, 인기, 실력 따위가 절정에 올라 가장 좋은 시기를 뜻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리즈는 영국 잉글랜드 웨스트요크셔주를 연고로 하는 리즈 유나이티드 FC를 말한다. 내가 응원하는 성남 FC는 리즈 같은 팀이다. 성남은 K리그 7회 우승을 한 최대 우승팀이고,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2회나 했다. 한때는 성남을 상대로 골을 넣으면 다음 시즌에 성남으로 영입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부자 구단이었다. 스타 선수가 너무 많아 열 손가락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성남 FC는 시민구단으로 전환되면서 가난해졌고, 급기야 2016년에는 2부 리그로 강등됐다. 시험이 두 달 남은 시점에 신림동 고시촌에서 강등 소식을 듣고 양꼬치 집에 앉아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울고 있는 나를 보고 같이 있던 형들은 내가 미쳤다고 했다. 아직도 나는 그때를 역사적 사실 중 하나로 기억하지 개인적 삶을 투영하지 않는다. 습하고, 눅눅하며, 가슴이 시큰해지고, 개인적으로 모든 고통이 집약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2부 리그에서도 한동안 꼴등을 했고, 나는 그해 시험에 떨어졌다.

10년 동안 성남 축구를 보면서, 부모님 손을 잡고 축구장에 왔던 삼남매는 어엿한 청년이 됐고, 컵라면을 먹던 귀여운 초딩은 휴가를 나와서 무용담을 늘어놓는 상병이 됐으며, 혈기왕성하게 홍염(붉은 화염이 나오는 응원도구)을 까던 형들은 배 나온 아저씨가 됐다. 형제자매들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같은 자리에서 성남 FC를 응원했고, 우리는 2018년 극적으로 승격해 우리가 있던 그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참, 나도 시험에 붙었고, 장가를 갔으며, 형제자매들은 하객 대부분이 법조인인 엄숙한 결혼식에서 “잘 가세요”라는 응원가를 불러주었다. 어두컴컴한 터널을 빠져나오니 그제야 ‘그깟 공놀이’라는 말이 나왔다.

“집세가 밀려도 난 상관없어, 애인이 없어도 난 상관없어, 쌀독이 비어도 난 상관없어. 성남만 이긴다면.” 요즘 ‘짠내’ 나는 응원가를 부르며, 형제자매들과 고통의 순간들을 안주 삼아 행복한 술자리를 가진다. 더할 나위 없다.

그깟 공놀이가 대체 뭔지 궁금하다면, K리그를 주제로 한 샤다라빠 형님의 연재만화와 성남 FC의 강등과 승격을 주제로 한 박태하 작가님의 ‘괜찮고 괜찮을 나의 K리그’라는 책을 권한다. 더 궁금해진다면 주말에 탄천종합운동장 블랙존을 찾아주시라. 응원도 같이하고 야탑역 인근 호프집에서 맥주도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나눠 보십시다.
 
도진수 청백 공동법률사무소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