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타곤(The Pentagon)’이라는 글자가 문양과 함께 중앙에 크게 적힌 미국 국방부의 브리핑룸.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과 마크 밀리 합참의장이 28일(현지 시간) 함께 연단에 섰습니다. 미국 특수부대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의 수괴를 제거한 직후 주무 부처인 국방부 고위인사들이 진행한 첫 언론 브리핑이었습니다.
거물 테러리스트인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를 사망케 한 기밀 군사작전의 세부사항이나 전후 과정 등에 대한 질문이 많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기자들의 질문은 ‘비디오’에 집중되더군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대 발표’를 하면서 “바그다디가 훌쩍이고 울고 비명을 지르며 겁쟁이처럼 죽었다”고 한 묘사를 확인할 수 있는 동영상 자료 말입니다.
백악관에서 상황실에서 지켜본 현장의 영상은 위성으로 전송되는 것으로, 야간 작전 도중 진입한 막다른 터널 내부의 인물 표정이나 소리까지 잡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 허풍과 과장이 심한 트럼프 대통령의 설명이 사실인지 여부에 그만큼 관심이 쏠려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었습니다.
밀리 합참의장은 “보지 못했다. 아는 바가 없지만 대통령이 현장에 있던 작전 담당자들에게 따로 들은 이야기가 있는지는 모르겠다”며 답변을 피해갔습니다. 전날 에스퍼 장관이 방송 인터뷰에서 같은 질문을 받고 내놨던 답변과 똑같았습니다.
공식 기자회견 후 기자와 만난 국방부의 한 당국자는 “정말 흐느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표정이 묘해졌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는데 밀리 합참의장이 모르는 작전상황 관련 정보가 있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도 어색한 미소만 지었을 뿐.
트럼프의 ‘중대 발표’ 기자회견이 워싱턴포스트의 지적대로 ‘허세와 과시로 가득했던 것인가…’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 당국자는 “어쨌든 군 관계자로서 지켜본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훌륭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모두가 지켜보고 있는데, 특히 IS 관계자들이 모두 듣고 있는 기자회견에서 그들이 숭상하고 따르던 지도자가 얼마나 비참하고 비겁하게 죽어갔는지를 알리는 것 자체가 이들의 사기를 꺾고 내부를 동요케 만드는 전략적인 메시지라는 겁니다. 진위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뉘앙스였습니다.
이 관계자는 저를 좀 더 쉽게 이해시키고 싶었던지 갑자기 영화 ‘인터뷰’를 봤냐고 물었습니다. 영화 속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헬기에 탄 채 죽음을 맞는 마지막 장면에서 어린애처럼 얼굴이 구겨지며 울먹이는 장면을 언급하면서요. 그는 “그런 장면이 북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겠느냐”며 “그런 것과 비슷한 효과”라고 말했습니다.
미국 예능 프로그램의 진행자들이 인터뷰를 가장해 김 위원장의 암살을 시도한다는 내용의 영화 ‘인터뷰’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 격렬했던 게 떠올랐습니다. 북한은 이후 영화 제작사인 소니엔터테인먼트에 대한 대대적 해킹을 시도하기도 했지요.
갑자기 북한이 언급되는 것을 들으면서 바그다디의 죽음과 IS 근거지 공습이 북한에도 메시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의 정보기관이 축적하고 있는 첩보들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상세하고 정확하며, 이를 통해 오랫동안 준비해온 군사작전은 일단 감행하면 목표한 타깃을 정확하게 겨냥해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정은 동아일보·채널A 워싱턴 특파원(북한학 석사)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