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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눈이 커지는 수학]감기-돼지열병 등 감염병 확산 경로, 수학으로 예측할 수 있어요

입력 | 2019-10-30 03:00:00


7일 경기 파주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발생 지역 인근에서 화물차가 소독을 받고 있다. 수학으로 전염병 확산 경로를 예측할 수 있다. 파주=김동주 기자 zoo@donga.com

가을로 접어들며 날씨가 쌀쌀해짐을 느낍니다. 환절기가 되면서 동네 병원마다 감기 환자들로 넘쳐난다는 뉴스도 들립니다.

서영: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니까 친구들이 하나둘 감기에 걸리는 것 같아요.

엄마:
아무래도 환절기라 면역력도 떨어지고 감기 바이러스 노출이 많아지겠지.

서영:
최근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뉴스도 들었는데 이것도 바이러스로 퍼지는 건가요?

엄마:
그래 감기나 독감, 아프리카돼지열병 등 모두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이란다. 그런데 감염성 질환이 유행하면 수학자들도 바빠진다는 사실 아니?

○ 감염병이 퍼지는 경로, 수학으로 밝히다


감기는 오랫동안 인류를 괴롭혀 온 질병 중 하나입니다.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감기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몇 해 전 유행한 메르스, 지카 바이러스 등은 그 심각성으로 국제사회의 우려를 낳기도 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하면서 축산 농가에서는 살처분을 통해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을 막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세균과 바이러스와 같은 여러 병원체에 감염돼 발병하는 질환을 감염병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감염은 음식의 섭취, 호흡에 의한 병원체 흡입, 다른 사람과의 접촉 등 다양한 경로로 발생합니다. 특히 여러 사람에게 전파되는 감염병을 전염병이라고도 하지요.

감염병의 시작과 확산 경로를 예측하고 조기에 차단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수학적 분석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돼지열병은 감염된 돼지와의 접촉, 바이러스에 오염된 음식물, 바이러스를 가진 진드기 등이 확산 요인으로 꼽힙니다. 이번에 한국에서 처음 확진 판정을 받은 농가에 대한 유입 경로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현실 세계의 문제를 수학적 문제로 바꾸어 해결하고 다시 현실에 적용하여 이를 설명하는 것을 ‘수학적 모델링’이라고 합니다. 이 모델링을 처음 시작한 사람은 ‘유체역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스위스 수학자 베르누이(1700∼1782)입니다. 베르누이는 1766년 확률이론을 활용해 천연두 때문에 사망한 사람들의 수를 구체적으로 분석, 발표했습니다. 이 연구는 ‘천연두 백신이 전염병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수학자들이 전염병 모델링을 본격적으로 연구한 것은 20세기부터입니다. 1893년 영국의 병리학자 로널드 로스는 말라리아를 옮기는 기생충을 발견하고 확산 모델을 만들어 190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습니다. 1906년 영국 수학자 W H 하머는 당시 런던에서 발생한 홍역의 유행 모델을 만들어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또 1972년 스코틀랜드 수학자 윌리엄 커맥과 역학자 앤더슨 매켄드릭 박사는 전염병이 유행할 수 있는 초기 조건과 전염병 확산 정도를 예측할 수 있는 ‘SIR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SIR 모델은 감염가능자(S)와 감염자(I), 회복자(R) 사이의 상호작용을 수학적으로 표현, 분석해 전염병이 어떻게 확산되는지 보여줬습니다. 이후에도 수학과 컴퓨터 기술이 발달하고 소프트웨어가 개발돼 수학적 모델과 함께 시뮬레이션 모델링 연구가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 질병통계예방센터(CDC)에서는 많은 수학자들이 질병 예측 및 확산 방지를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국가수리과학연구소’ 등에서 인간 이동의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실증 데이터를 이용해 감염병 발생 시 확산 경로를 예측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지역별 인구 구조, 인간 이동, 감염병 발병에 대한 데이터를 확보해 분석하고, 감염병 확산 시뮬레이션 모델의 정확성과 유효성을 검증하는 방법론 연구를 진행하고 있죠.

○ 다양한 관점의 전염병 확산·예측 모델


세계 각국의 수학자들은 지금도 전염병 확산을 좀 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기 위해 주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동(교통) 수단의 발달로 사람들이 짧은 시간 내에 먼 거리까지 이동이 가능하고 병원균을 더 효과적으로 퍼뜨릴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기존 모델의 한계를 극복하고 예측 모델의 정확성을 높이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이탈리아 토리노 공대와 미국 뉴욕대 공동연구팀은 개인이 사회적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시간에 따라 전염병 확산 패턴이 전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활동 중심 네크워크 모델’을 발표했습니다. 연구팀은 ‘자기흥분 프로세스’라고 불리는 모델링 기법을 사용해 최초 감염자의 활동이 전염병의 확산 속도와 사회 전체 감염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즉 단순히 물리적인 이동 경로뿐 아니라 지리적·개인적·사회적 특성, 개별적 상호작용도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거죠.

감기나 아프리카돼지열병처럼 관련된 바이러스의 종류가 매우 많은 경우에는 백신과 치료제의 개발이 무척 어렵다고 합니다. 최근 유행하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축산 농가의 경제적 손실이 커서 안타까운 일이지만, 다행히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없다고 합니다. 동물과 사람 간 전파가 가능한 인수공통 감염병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감기와 독감이 유행하는 계절입니다. 손을 자주 씻고 사람이 많은 곳을 피하는 등 면역력 강화를 위한 건강관리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감염병의 확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생각하면서 이를 수학적으로 어떻게 예측하고 예방할 수 있을지도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박지현 반포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