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킨 것 아니고 드레스코드 없는데 우리는 왜 같은 여행지에 등산복 차림? 여행의 본질은 자신을 들여다보기 가 본 나라 수를 늘릴 게 아니라 여행 속 쉼표 모아 인생을 그려야
이병률 시인·여행작가
얼마 전 문학행사가 있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갔는데 똑같은 짙은 화장과 헤어스타일을 한 여성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도심의 반은 우리나라에서 온 여성들이었다. 같은 곳에 들르고 같은 것을 사온다. 너무 몰린다. 몰리되 너무 똑같은 형태로 몰린다. 남이 하니까 나도 하는 여행이 늘고 있다. 너무들 가니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여행을 하고 있다. 그러니 이제 여행은 남이 하는 방식을 따라 하는 정도쯤으로도 충분한 여행이 되고 있다.
최근 경남 통영에 사는 한 여성 예술가를 만났다. 자연스럽게 여행 이야기가 오갔다. 적어도 약간의 위험요소가 포함된 여행이 진짜 여행이라는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행은 위험해야 제맛이라거나, 여행지에서 위험한 일은 꼭 겪어봐야 한다는 톤과는 다른 건강한 말로 들렸다. 하지만 정작 위험한 여행을 떠나겠다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정말 가고 싶어서 가는 것인지, 많은 사람이 가기에 가는 것인지 모를 그곳에서 이제 우리나라 단체 관광객들은 삼겹살을 구워 먹고 김치찌개를 끓여 먹는다. 잘 먹는 것이야 무슨 잘못이겠는가마는 작은 숙소의 공동 부엌을 장악하고서는 떼거리로 하는 행동들이다. 외국인들은 이 과격한 문화를 받아낼 재간이 없어 더 이상 마주치지 않기 위해 앞질러 속도를 내서 걷는다고 한다.
여행을 가르쳐주는 곳은 없을까. 여행학교의 수료증을 받기라도 한다면 우리는 과한 복장 차림새만으로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일 앞에 조금 다른 자세를 취하지 않을까. 단체로 유럽의 박물관을 찾은 한국 사람들이 저마다 등산복을 입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물관에서 빠져나온 그들이 관광버스에 올라 떠날 채비를 할 때 나는 또 보고야 말았다. 벤치에 앉아 있던 노부부가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지만 버스에 타고 있던 한국인 관광객들은 그 누구도 손을 흔들어주지 않았다. 단체복을 나눠준 것도 아니고 드레스코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다들 산에 가는 옷을 입고 유럽 거리를 활보하느냐 말이다.
적어도 자신의 사정을 들여다보는 일이 여행이었으면 한다.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걸고 대답하는 혹은 하지 못하는 시간들 또한 여행의 정체라는 걸 천천히 알아갔으면 한다.
중요한 것은 여행을 준비하면서 어느 정도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 보겠다는 계획도 포함시키는 것이다. 일정을 비워 놓는 것이다. 하루에 하나만 보거나, 하나만 하자는 식의 계획도 참 좋을 것 같다. 오히려 미리 정해 놓은 일정과 목록을 애써 따르지 않아도 되는 것이 여행일 수 있으니까.
가 본 나라의 수를 늘리며 즐거워할 게 아니라 여행을 통해 ‘내가 얼마나 넓어졌느냐’에 의미를 두는 게 어떨까.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를 스스로에게 묻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는 무엇으로 행복한 사람인가’ 하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 중요한 거란 걸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지금 여행의 점선들을 모아 하나의 인생을 완성해 가는 중이다.
이병률 시인·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