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영 사회부 기자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의사는 최근 기자와 통화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24일 서울 노원구의 한 병원에서 50대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의사가 크게 다친 일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의사들이 이 같은 화를 면하려면 방탄복이라도 챙겨 입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마냥 농담처럼 들리지만은 않았다.
의료진을 상대로 한 폭행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사건 이후 의료진 폭행에 대한 처벌은 강화됐지만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올해 3월 서울 성북구에서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환자가 진료실에 오물을 투척하고 의사를 폭행하는 일이 있었다. 이 환자는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의사를 폭행했다.
의사들은 불안감을 호소한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의사는 “뉴스에 나오는 사건들이 남 일 같지가 않다”며 “(나도 당할 수 있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하루하루 일하고 있다”고 했다. 다른 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병원 내 직원 주차장에서 낯선 사람과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피하게 된다”며 “많은 의사들이 불안감을 넘어 무력감까지 느끼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올해 8월 복지부는 100개 이상의 병상을 갖춘 의료기관에 경찰과 연결된 비상벨을 설치하고 보안인력 배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당초 이 규칙은 이달 24일부터 시행하는 것으로 돼 있었지만 보안인력 배치에 따른 비용 발생 문제와 관련한 규제심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아직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병원 내에서 의료진을 상대로 한 폭행에 대해서는 형법의 ‘반의사불벌죄’(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죄) 조항을 적용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의사들이 병원에서 일하는 동안 누군가가 갑자기 나타나 나를 해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싸여 있다면 진료에 집중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의료진에 대한 폭행이 병원을 찾는 환자들에 대한 위협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이유다. 의료진을 폭행 피해의 불안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
김소영 사회부 기자 ks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