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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내 극한직업’ 영장판사… 지나친 재량권 부여가 문제[인사이드&인사이트]

입력 | 2019-10-30 03:00:00

도입 22년 된 ‘영장심사’ 과제
중앙지법 1명이 최대 18건 처리… 하루만에 기록 보고 결론 내려야
형소법엔 증거인멸 등 기준 불구… 대법 예규 참고해 구속영장 결정
자의적 판단 개입할 여지 많아… 檢 “좀 더 명확한 기준 필요”
‘불구속 재판’ 대원칙 지키면서 ‘영장 발부=유죄’ 인식 불식 시급
정치권-檢 “영장항고제 도입을”… 판사 수 늘리고 합의부 신설 주장도




이호재 기자

“영장에 대한 심사도 재판인데, 국정감사를 빌미로 그것에 대해 압력을 가하고 판결에 개입하려는 시도가 진행돼 참담하다. 국회가 압박하는 것은 결단코 반대한다.”(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

“법관의 재량권을 초과했을 뿐 아니라 형사소송법의 구속 사유는 전혀 판단하지 않고 엉뚱한 이야기만 했다. 이는 법률 위반이라고 생각한다.”(자유한국당 주광덕 의원)

14일 서울 서초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서울중앙지법 국감장. 여야 의원들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54)의 동생 조모 씨(52·전 웅동학원 사무국장)의 영장을 기각한 명재권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52·사법연수원 27기)의 국감 증인 출석 여부를 두고 이같이 다퉜다. 민주당은 지난해 10월 서울중앙지법의 국감 때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의 영장을 기각한 영장전담 판사들을 ‘방탄판사단’이라고 비판했지만 이날은 정반대 입장을 취한 것이다.

명 부장판사는 결국 국감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았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중요 사건마다 매번 구속영장 발부 기각 여부를 두고 벌어지는 논란을 줄일 대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997년 국내 도입 후 22년 동안 시행 중인 구속영장실질심사 제도에 대한 근본적 재평가와 함께 개선 방안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 인권 보호 기여 평가 받지만…

영장전담판사는 검사가 피의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피의자를 불러 직접 심문한 뒤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하는 일을 전담한다. 1997년 1월 형사소송법 개정 때 무분별한 구속수사 관행을 막기 위해 도입된 영장심사를 담당하면서 인권 보호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구속영장 발부율은 제도가 도입되기 직전인 1996년 92.6%였지만 도입 직후인 1997년 82.2%로 10% 이상 떨어졌고, 지난해 81.3%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제도 도입 이전엔 판사들은 검사가 제출한 영장청구서와 수사기록만 읽고 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심사했지만, 법정에서 피의자에게 반론을 들으면서 발부 여부를 좀 더 신중히 결정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조 전 장관 수사 등 최근 주요 사건마다 영장전담판사의 판단에 대해 비판이 거세다.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일반 국민들도 구속영장 발부 기각 여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는 구속영장 발부가 ‘유죄’라고 받아들여지고, 중요 수사에 대한 사법부의 유무죄 최종 결론보단 구속 여부라는 잠정적 결론에 흔들리기 때문이다. 서울지역의 한 판사는 “정식 재판이 아닌 영장실질심사 결과가 대법원 확정 판결보다 더 의미 있는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기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 30년 넘은 법관들도 영장발부 여부 예측 못해

형사소송법 제70조는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구속영장을 발부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면서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 등을 구속 이유로 규정하고 있다.

영장전담판사들은 형소법보단 구체적인 이유가 적혀 있는 대법원의 ‘인신구속 사무의 처리에 관한 예규’를 참고해 구속 여부를 결정한다. 이 예규는 증거를 인멸할 염려에 대해 ‘인멸의 대상이 되는 증거가 존재하는지 여부’ 등 4가지를 명시하고 있다. 또 도망할 염려에 대해선 크게 4가지, 세부적으론 15가지의 기준을 정해 놨다. 예를 들어 피의자의 가족관계에 대해서 ‘연로한 부모와 함께 거주하거나 부모를 부양하고 있는지 여부’ 등을 고려하라고 돼 있는 것이다.

일부 영장전담판사는 피의자가 이에 해당하는지를 수기로 체크하며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한다. 신임 영장전담판사들은 법관 교육 때 받는 대외비 교재를 통해 이와 비슷한 기준을 서로 공부한다.

이처럼 기준은 있지만 영장 발부 여부는 판사들 사이에서도 예측하기 힘들다. 30년 넘게 법관 생활을 한 엘리트 법관 사이에서도 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놓고서는 늘 의견이 엇갈린다. 영장전담 판사의 재량도 많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문무일 전 검찰총장도 2017년 12월 기자간담회에서 “일반적으로 구속, 특히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고 복원하는 것에 관해서는 좀 더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영장 발부의 재량을 지적한 바 있다.

특히 일부 영장전담판사는 부적절한 사유를 근거로 자의적 판단을 내린다는 비판도 나온다. 올 3월 박정길 서울동부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53·29기)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63)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과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공공기관의 방만한 운영과 기강 해이가 문제되었던 사정”이라고 썼다.

당시 법원 내부에서조차 형소법과 예규가 정해놓지 않은 표현을 써 성향을 드러냈다는 말이 나왔다. 법원장 출신 변호사는 “갈수록 주목을 받는 만큼 영장전담 판사들이 스스로 자중해야 한다. 한쪽으로 치우쳤다고 해석될 수 있는 발부 기각 이유는 사법부의 신뢰를 저하시킬 뿐”이라고 지적했다.

○ 영장판사들, 신상털이에 움츠러들어

영장심사 방식과 영장전담판사의 업무방식은 베일에 가려 있다. 일종의 재판인 영장심사가 기소 전 사건이라 비공개돼 검사와 피의자, 피의자 측 변호인 외엔 법정에서 영장전담 판사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공개 재판에서 이뤄지는 일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같은 법원에서 일하는 동료 판사들에게도 업무에 대해선 보안을 유지한다고 한다.

영장전담판사를 누구에게 맡길지는 다른 판사들의 보직과 마찬가지로 수석부장판사가 포함된 각급 법원 법관사무분담위원회 등에서 결정한다. 영장전담판사는 보통 하루 만에 기록을 보고 결론을 내려야 해 판사들 사이에서도 업무 강도가 센 보직으로 꼽힌다. 평일 기준으로 오전 9시에 출근하고 밤 12시를 넘겨 퇴근하는 경우가 잦다. 금요일 늦게 영장이 청구되는 경우가 있어 토요일도 당직 근무를 서며 심사를 한다.

특히 주요 사건이 몰리는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들의 경우엔 더 힘든 하루를 보낸다. 현재 4명이 근무하는 서울중앙지법의 경우 2명씩 2개조로 나눠 각각 구속영장과 압수수색영장을 심사하는데 1명당 하루에 3∼18건을 처리한다.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 출신 변호사는 “검찰과 변호인을 합쳐 의견서가 2000쪽가량 제출된 적도 있다. 지하철이 끊겨 사비로 택시를 타고 다닐 정도로 매일 늦게 끝났다”고 말했다.

최근 영장전담판사들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이 많아지고, 영장전담판사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면서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있다. 특히 정치권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영장전담판사에 대한 ‘신상털이’가 거세지는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 영장전담 출신 판사는 “영장전담판사를 할 때는 스마트폰을 아예 안 봤다. 가족들에게도 인터넷은 보지 말라고 했다”고 했다.

○ 불구속 대원칙 고려해 제도·인식 변화 이뤄져야

정치권과 검찰을 중심으론 영장전담판사가 구속영장을 기각하면 상급 법원에 판단을 다시 요청하는 ‘영장항고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판에서 1심 결과에 불복해 2심에서 다시 판단을 받는 것처럼 영장심사도 1심에서 기각되면 2심에서 다시 심리하게 하자는 것이다. 현재 영장이 기각되면 검찰의 영장 재청구가 가능한데 영장항고제를 도입하면 인권 보호를 위해 영장실질심사를 도입한 취지와 어긋난다는 반론도 있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는 “구속영장은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이 재판 전까지 도망가지 못하게 해 형이 원활하게 집행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인데 영장항고제는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항고 기한을 설정하는 등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영장전담판사 수를 늘리는 것도 해결책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격무에 시달리다 보니 기록 검토에 쫓기고, 인원이 적다 보니 사건 관계인과 얽힐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경험이 많은 판사들을 배치하거나 다른 재판처럼 ‘합의부’를 만들자는 주장도 있다. 법원장 출신 변호사는 “중요 사건을 3명이 합의해서 결정하는 영장전담합의부를 만들면 사건을 신중하게 검토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제도 개선 전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은 ‘불구속 재판’이라는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이다. 구속 여부는 유죄가 아니고, 피고인의 유무죄는 공정한 재판을 통해 가려야 하는 것이다. 영장심사가 형사소송법의 전체적인 개정과 함께 생긴 것처럼 새로운 제도 도입은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다른 제도와 함께 논의돼야 한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