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힘은 끝내줬던 ‘유도 소녀’ 도복 바꿔 입으니 ‘끝판왕’

입력 | 2019-10-30 03:00:00

[오늘은 샛별 내일은 왕별]‘쿠라시’ 국제무대 데뷔전 우승 임우주
우즈베크 전통 무술 ‘쿠라시’… 바닥 기술 못쓰는 ‘입식 유도’




[알고 봅시다] ‘정당한 방법으로 목표에 도달한다’는 뜻을 지닌 우즈베키스탄의 전통무술 쿠라시(사진)는 ‘서서 하는 유도’로도 알려져 있다. 유도의 한판, 절반, 유효에 상응하는 할랄(Halal), 얌보시(Yambosh), 찰라(Chala) 판정이 있다. 유도와 달리 바닥 기술은 사용할 수 없다. 양 선수는 각각 ‘약탁(Yakhtak)’으로 불리는 초록색과 파란색 상의의 유니폼을 입는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에서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유도에서 쿠라시 선수로 전향한 뒤 충주 세계무예마스터십에서 한국 쿠라시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여자 78kg급)을 딴 임우주는 “2022년 항저우 아시아경기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겠다”고 다짐했다. 수원=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둘 다 했으니… 종합무도인 아닐까요.(웃음)”

임우주(20·경기대)는 지난달 2일 충주세계무예마스터십 쿠라시 여자 78kg급에서 우승했다. 한국 쿠라시 사상 첫 금메달. 유도 선수였던 그는 ‘어느 종목에 더 애착이 가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10년 가까이 유도 선수로 활약했던 임우주는 올해 4월 유도복 대신 ‘약탁(쿠라시 도복)’을 입었다. 그러고서 나간 첫 대회에서 이 종목 강자들을 잇달아 꺾고 쿠라시 78kg급 챔피언에 등극했다. 유도 선수였을 때는 ‘국가대표 상비군’이 최고 경력이었지만 종목을 바꾸자마자 일약 세계 최강이 된 것이다. 임우주는 “세계무예마스터십이 쿠라시 세계선수권대회를 겸한 대회였다. 그 덕분에 유도를 하며 한 번도 받지 못했던 ‘국가대표 연금 포인트’를 얻었다. 동기 부여가 된 만큼 더 열심히 기술을 연마하겠다”며 웃었다.

우즈베키스탄의 전통무술인 쿠라시는 유도와 매우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유도는 상대 선수를 넘어뜨린 뒤 조르거나 꺾는 바닥 기술을 구사할 수 있지만 쿠라시는 선수를 다시 일어나게 한 뒤 경기를 속개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서서 하는 유도’로 불린다. 국내에서는 생소한 종목이었지만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뒤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유도 선수 가운데 종목 변경을 고민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임우주도 비슷한 사례다. 여자 격투기 선수로는 큰 키(170cm)에 배구 선수로 뛰었던 엄마를 닮아 손이 크고 힘이 좋은 그의 재능을 아쉬워한 쿠라시 관계자가 ‘유도 은퇴’를 선언한 임우주에게 쿠라시를 권유한 게 계기가 됐다.

쿠라시를 선택한 건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가 됐다. 평소 몸무게가 70kg대 초반인 임우주는 78kg급에 출전했다. 몸무게를 일부러 늘리지 않았으면서도 자신보다 체중이 더 나가는 선수들을 제압했다. 앞으로 체중을 늘려가며 이에 맞는 훈련을 하면 당분간 이 체급 최강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임우주는 “유도는 경기 도중 매트에 엎드려 잠시 쉴 시간을 벌 수도 있지만 쿠라시는 그럴 틈이 없다.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이게 쿠라시에서는 큰 장점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예상 못한 쿠라시 금메달을 따면서 교도관이 꿈이었던 임우주의 미래에 약간의 수정이 필요해졌다. 최종 목표는 변함이 없지만 쿠라시 금메달을 계기로 ‘경유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2022년 항저우 아시아경기 금메달이다.

“지금까지 아시아경기, 올림픽 같은 국제대회는 ‘응원하러 가는 곳’이었지 경기하러 가는 데가 아니었어요. 아시아경기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단상 가장 높은 곳에 서면 감회가 정말 남다를 것 같아요.”

세계무예마스터십에서 승리를 거둘 때마다 ‘이게 생시인가’ 싶어 계속 울었다던 그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수원=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