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로 新성장동력 확보 나선 기업들
“불확실성이 클수록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흔들림 없이 해야 한다.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기술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앞으로 변화가 더 많아질 것이다. 지금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우리의 능력을 200∼300% 발휘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기술 공유 및 협업이 일상적으로 이뤄질 때 우리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사회적 가치 창출이 가능할 것.” - 최태원 SK그룹 회장
국내 대기업 총수들은 최근 연구개발(R&D)을 통한 미래비전 창출을 강조하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 일본 수출규제, 세계경제 하방 등 각종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지만, 기업의 R&D 투자가 멈춰서지 말고 더 속도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지금 어렵다고 R&D 투자를 줄이면, 10년 뒤 20년 뒤 생존가능성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1000대 기업의 R&D 투자액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이 지난해 R&D 투자 상위 1000대 기업을 대상으로 ‘R&D 스코어보드’를 조사한 결과, 지난해 R&D 투자액은 49조7000억 원으로 2017년(46조 원)보다 7.9% 증가했다.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1000대 기업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중은 평균 3.76%씩 증가했다.
R&D 투자는 상위 기업이 주도했다. 상위 100대 기업의 R&D 투자는 42조 원으로 1000대 기업 전체의 85.0%를 차지했다. R&D 투자 1조원 이상인 기업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전자, 현대자동차, 삼성디스플레이, 기아자동차, LG디스플레이, LG화학 등 8곳이다. 이들 기업의 R&D 투자는 30조 원으로 1000대 기업 60.4%를 차지했다.
삼성전자는 인공지능(AI), 로봇, 자동차용 전장사업,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을 ‘삼성전자의 미래 먹거리’로 삼고 과감한 R&D 투자를 이어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7년 11월 ‘삼성리서치(Samsung Research)’를 출범하고 산하에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 센터를 신설해 4차 산업혁명의 기반기술인 AI 관련 선행연구 기능을 강화했다. 지난해 1월 실리콘밸리에 AI연구센터를 설립한 삼성전자는 그 뒤 5월 영국 케임브리지, 캐나다 토론토, 러시아 모스크바에 잇달아 AI연구센터를 추가 개소하고, 글로벌 우수인재와 기술을 선제적으로 확보할 방침이다.
현대차그룹은 자율주행차와 친환경차 등 미래차 개발과 오픈 R&D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미래 모빌리티 기술 및 전략 투자에 2025년까지 총 41조 원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 수석부회장은 올해 1월 신년사에서 “2019년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시장의 판도를 주도해 나가는 게임체인저로서 새롭게 도약하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SK그룹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T)과 AI등 혁신기술을 핵심 동력으로 보고 글로벌 기술 경쟁력 끌어올리기에 다걸기 하고 있다. SK그룹이 내년 1월 출범을 목표로 한 그룹 차원의 교육 인프라 ‘SK 유니버시티(SK University)’ 설립을 준비하는 것도 혁신기술 역량을 내재화하고 우수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기업들의 R&D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선 적지 않은 산을 넘어야 한다는 게 산업계의 중론이다.
특히 기업들은 경직된 국내 노동시장에서 기업들이 고용을 늘리기 위해서는 주 52시간 근로제와 최저임금 정책을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성장률을 높이려면 기업들의 R&D 투자 확대가 필수적인데 이 또한 주 52시간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는 얘기다.
재계 관계자는 “주 52시간 근로제 때문에 기업들이 생산공장은 물론 R&D센터까지 해외로 옮기려 하고 있다”면서 “탄력근로제·선택근로제 확대 등 주 52시간제의 부작용을 해소할 방안을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경제단체 고위관계자는 “자동차·디스플레이·조선·철강·화학 등 기존 주력 산업이 정체 국면에 접어들면서 기업들은 신사업 발굴에 목을 매고 있지만 각종 규제로 새로운 사업을 벌이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