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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의료원 노사갈등 장기화되나

입력 | 2019-10-31 03:00:00

노사 2차 사적조정위원회 평행선… 해고자 복직 등 합의 힘들 듯
고공농성-로비집회 120일 넘기며 환자와 가족들 불편 이어져




28일 대구 남구 대명동 영남대의료원 1층 로비에서 노조원들이 부당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28일 오후 8시경 대구 남구 대명동 영남대의료원 본관 1층 로비. 스펀지 매트 위에 장판을 깔아 만든 공간에서 병원 노조원 3명이 부당 해고된 동료들의 복직을 촉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커다란 현수막에는 노조 기획탄압 진상 조사, 책임자 처벌 및 재발 방지, 노조 원상회복, 비정규직 철폐 등 5대 요구안이 검은색 글씨로 적혀 있었다.

이들은 이 병원에서 해고된 박문진(58·여) 송영숙 씨(42·여)가 건물 옥상에서 고공 농성을 시작한 이후 로비에서 집회를 했다. 정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한가운데 약 10m² 공간을 쓰고 있다. 30일 고공 및 로비 농성에 돌입한 지 122일째를 맞았다. 병원을 자주 찾는다는 한 고객은 “대구의 대표적인 대학병원인데, 농성이 일상화된 것 같아 안타깝다. 하루빨리 노사가 합의해 정상화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남대의료원은 난감한 입장이다. 병원 관계자는 “매주 수요일 낮 12시에는 종교 관계자들과 같이 접수처 가까운 곳에서 합동 집회를 여는데 소음으로 인한 환자 및 방문객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영남대의료원 노사 대립이 길어지면서 병원 운영에 적잖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입원 환자와 고객의 불편은 물론이고 병원 이미지도 크게 훼손하는 상황이다. 가장 큰 문제는 노사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돼 해결의 실마리를 좀처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병원 노사에 따르면 30일부터 2차 사적조정위원회를 시작한다. 앞서 노사는 지난달 17일부터 이달 2일까지 3차례에 걸쳐 1차 사적조정위원회를 가졌지만 큰 의견차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후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는 해직자 2명 가운데 송 씨가 15일 건강 문제로 내려왔다. 현재 남은 박 씨의 건강 상태도 점점 나빠지고 있다. 박 씨는 “높이 70m인 지대라 체감온도는 더욱 낮다. 사측이 안전을 이유로 옥상에 전기를 공급하지 않아 손난로와 온열조끼로 추위를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2차 사적조정위원회는 장근섭 대구고용노동청장이 최근 중재해 마련했다. 노조가 5대 요구안을 다시 제시했지만 사측은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라서 이번에도 합의점을 찾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영남대의료원 관계자는 “해고자를 복직시키고 밀린 임금 13년 치를 지불하는 것은 의료원 대표가 병원에 손해를 끼치는 배임죄에 해당될 수 있어 현실적으로 수용하기 어렵다. 내부적으로 특별 채용 방식 등을 논의하고 있지만 아무것도 확정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영남대의료원 정상화는 당분간 어렵다는 여론이 많다. 대구지역 내 5개 상급종합병원 가운데 한 곳이기 때문에 사태가 길어지면 다른 종합병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퇴근 후 농성에 참가하는 노조원들의 피로가 쌓이면 조만간 정상 근무가 어렵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김진경 영남대의료원 노조지부장은 “노조 확립에 따른 의료서비스 개선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이번 조정에서 사측과 좋은 결과를 내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영남대의료원 노사 갈등은 2006년 주5일제 시행에 따른 인력 충원을 놓고 대립하면서 이어지고 있다. 당시 농성 과정에서 폭력 사태가 발생해 직원 10명이 해고됐다. 이후 7명은 부당 해고 판결에 따라 복직했지만 고공 농성 중인 박 씨 등 3명은 해고자로 남아 있다. 지난 몇 년간 복직을 위해 삭발 및 단식 투쟁 등을 이어오다 올 7월 1일부터 고공 및 로비 농성을 벌이고 있다.
 
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