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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신안섬 지역 농민운동 거셌다… 최성환 목포대 연구팀 조사

입력 | 2019-10-31 03:00:00

지도-매화도-하의도 등 6개섬에서 1924년부터 5년간 총 325명 참여
다양한 농민단체 결성해 항일투쟁




전남 신안군 암태면 단고리에 세워져 있는 암태도소작인항쟁기념탑. 일제강점기 신안에서는 암태도뿐 아니라 일제 수탈에 항거하는 농민운동이 치열했다. 독립기념관 제공

1923년 8월부터 1년간 이어진 전남 신안군 암태도 소작쟁의는 민족의 가슴에 응어리져 있던 낡은 제도와 외세에 대한 저항의 불길이 항쟁으로 거듭난 사건이었다. 경술국치 이후 일제의 비호를 받아온 지주들이 소작료를 7∼8할까지 올려 받자 암태도 주민들은 분연히 일어나 소작료 불납으로 저항하면서 악질 지주와 맞섰다. 양쪽이 크게 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일경(日警)은 편파적으로 주민들을 구속했다. 분노가 폭발한 암태도 주민들은 돛단배를 타고 목포로 나가 경찰서와 재판소 앞에서 두 차례 단식투쟁을 벌였다. 동아일보는 1924년 7월 15일자에 암태도 주민들의 당시 투쟁 소식을 ‘필경 아사동맹(畢竟餓死同盟)’이라는 제목을 달아 전했다. 일제는 소작쟁의가 더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중재에 나섰다. 소작료는 4할로 조정됐고 쌍방 간의 고소도 취하됐다. 사실상 암태도 주민들의 승리였다.

일제강점기 신안 섬 지역의 농민운동이 그동안 알려진 것보다 훨씬 치열하게 전개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최성환 목포대 사학과 교수 연구팀은 최근 신안군청에서 열린 ‘일제강점기 신안군 농민운동 연구용역 보고회’에서 “1924년부터 1928년까지 신안군 지도, 자은도, 암태도, 도초도, 매화도, 하의도 등 6개 섬에서 총 325명이 참여하고 123명이 구속된 농민운동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사실은 최 교수팀이 당시 신문 기록과 판결문, 수감 기록 등을 광범위하게 조사해 밝혀냈다.

당시 농민운동 참여자들은 공무집행방해와 업무방해, 소요, 상해, 주거침입, 공갈, 협박죄 등 죄목으로 최고 징역 2년에서부터 벌금 20원 등의 형량을 선고받았다. 123명이 구속되는 희생을 견뎌내면서 섬마다 투쟁 성과를 냈다. 32명이 구속된 자은도에서는 지주들이 소작료를 5할로 낮췄고 26명이 구속된 도초도에서는 소작료 4할을 수용했다. 26명이 구속된 매화도에서는 소작료를 5할로 정하고 소작인에 대한 경영자금과 비료 지원을 얻어냈다.

신안 섬 지역의 농민운동 발생 전후로 다양한 농민단체가 결성됐다. 1923년 12월 암태소작인회가 결성된 것을 시작으로 지도소작인공조회, 매화도노농공조회, 하의소작인회, 임자노농회, 자은소작인회, 도초소작인회, 비금소작인회, 안좌소작인회 등이 차례로 만들어졌다.

암태도 소작쟁의는 이후 식민지 농민들의 항일투쟁으로 발전했지만 당시 참가자들은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최 교수는 “일제강점기 신안 농민운동 구속자 123명 가운데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은 이는 단 4명에 불과하다”면서 “지속적인 조사와 검증, 재조명 등을 통해 신안 농민운동 참여자들이 독립유공자로 지정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안군은 농민운동 관련 인물의 후손들이 독립유공자 서훈을 신청할 경우 행정 업무를 지원하고 학술 행사와 자료 수집 등 다양한 선양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박우량 신안군수는 “신안 농민운동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한 학술연구를 적극 지원하겠다”며 “내년에 ‘신안 농민운동기념사업회’를 만들고 신안 전체의 항일농민운동 역사를 기념할 수 있는 공간도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