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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츠앱稅’ 역풍에… 레바논 총리 사임

입력 | 2019-10-31 03:00:00

세금 반대 시위가 반정부로 확산… 친정부 헤즈볼라와 무력 충돌도
BBC “중동 사회변혁 요구 커져”




대형 통신업체 회장 출신인 사드 하리리 레바논 총리(49·사진)가 세수(稅收)를 늘리려고 스마트폰 메신저 ‘와츠앱(WhatsApp)’ 사용자들에게 월 6달러(약 7000원)의 세금을 부과하려다가 이에 반발해 일어난 반정부 시위대의 요구에 29일 사임했다.

AP통신은 “하리리 총리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 위기를 해결할 활로를 찾기 위해 미셸 아운 대통령에게 사직서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며 “17일 집회를 시작한 반정부 시위 참여자들이 그들의 첫 승리를 자축했다”고 전했다.

하리리 총리는 이슬람교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를 중심으로 한 정부 지지자들이 수도 베이루트 중심가에서 반정부 시위대 본거지를 무력 공격한 직후 사퇴를 선언했다. 반정부 시위는 초기에 평화적인 비폭력 집회로 시작됐지만 정부 지지자들이 반정부 시위대의 텐트에 불을 지르는 등 무력 충돌이 빚어지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시위대의 요구 사항도 빈부 양극화와 경기침체 해소, 고질적 부정부패 척결 등으로 확대됐다. 베이루트, 트리폴리를 비롯한 주요 도시의 은행과 상점이 2주 가까이 문을 열지 못해 사회 시스템이 마비됐다.

미국 조지타운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하리리 총리는 한때 중동 지역 무선통신사업을 주도했던 오게르텔레콤 회장을 지낸 기업가 출신 정치인이다. 2009∼2011년 총리를 맡은 뒤 2016년 다시 총리로 임명됐다. 2017년엔 이란의 레바논 내정 간섭과 자신에 대한 암살 위협을 비판하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가 철회한 바 있다.

레바논 헌법에는 종파 간 권력 안배를 위해 대통령은 기독교 마론파, 총리는 이슬람교 수니파, 국회의장은 시아파가 맡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반정부 시위대는 “종파주의에 휘둘리지 않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정부가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영국 BBC는 “레바논을 기점으로 2011년 ‘아랍의 봄’에 이은 사회 변혁 움직임이 이라크, 이집트, 튀니지 등 중동 지역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