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중반 국감에서 터져 나온 우리들병원 특혜와 여권 인사 연루설 공수처 설치하면 검찰 수사 못할 것 세계가 한 번도 경험 못한 공수처, 의원수 확대 미끼로 與野 야합 말라
김순덕 대기자
차관은 답을 못 했다. “단 한 곳인가에 그 유사한…” “대개 수사권만 갖고 있지만 기소도 일부 할 수 있는 곳이 있었던 것 같은데…” 얼버무렸을 뿐이다. 나중에 직원이 찾아줬다며 영국의 중대부정수사청을 언급했으나 여기는 공직자만 대상으로 하지 않아 답이 못 된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로 가는 문재인 정부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세계 최초의 경험을 안겨줄 공산이 크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어제 조국을 입에 올리지도 않은 채 송구하다며 검찰개혁의 대의와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강조했다. 여권 따라 검찰개혁, 검찰개혁 하다간 노무현 정부 때 강행했다 위헌 판정으로 도로 물렸던 ‘개혁입법’처럼 될 수가 있다.
공수처는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으로 김경수 경남지사를 법정 구속했던 성창호 판사도 직권남용죄로 기소하거나 개인 비리를 파헤칠 수도 있다. 재판의 독립을 보장하는 헌법정신이야 무시하면 그만이다. 공수처 권력이 법원과 검찰을 능가한다는 점에서 국가기관 서열이 사법부를 앞서는 중국 국가감찰위원회와 맞먹는다.
그러나 공수처는 전현직 고위공직자와 그 가족이라는 ‘귀족’만을 일반 국민과 분리해 수사한다는 것부터 ‘사회적 특수 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는 헌법과 어긋난다. 문 대통령이 공수처의 이 같은 불공정성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왜 공수처를 밀어붙이는지 이유가 궁금한 것이다.
조국 사태에 항의해 삭발한 이언주 의원은 두 전직 대통령과 수백 명의 정적을 제거하고 돌아보니 임기 후가 겁이 나는 것이냐고 물었다.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는다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보면 대통령으로선 좌를 높이고 우를 잠재울(左高右眠) 공수처가 절실할 수도 있다.
산업은행의 우리들병원 1400억 원 특혜 대출에 여권 인사 연루 의혹이 다시 불거진 상태다. 7일 국감에서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신한은행의 사문서 위조 등에 대해 ‘증거자료와 같이 혐의가 인정된다’고 적힌 서류를 읽어주며 “검찰이 5월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했다니 황당하다”고 지적해 서울중앙지검장으로부터 “잘 살펴보겠다”는 답을 받아냈다.
물론 청와대는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그러나 조국 일가 수사하듯 서울중앙지검이 똑똑히 살펴본다면 결말은 달라질지 모를 일이다. 검찰이 수사 중이라고 해도 공수처가 신설돼 이첩을 요구한 뒤 혐의 없다며 덮어버리면 국민은 알 도리가 없다. 대통령 임기 중반이 다 된 지금, 공수처 설치를 서둘러야 할 이유가 차고 넘치는 셈이다.
공수처법안과 함께 패스트트랙에 올라간 선거법개정안의 국회 부의 시점이 11월 27일이다. 예산안 처리 시한은 12월 2일로 공수처법안이 부의 되는 3일과 맞물려 있다. 여당은 일부 야당에 의원수 확대와 쪽지예산을 얹어주며 ‘거래’를 해서는, 공수처법안까지 한꺼번에 우당탕 처리할 복안인 듯하다. 그리고 나머지 야당의 장외투쟁에 귀 막은 채 내년 총선까지만 버티면 20년 좌파 집권도 가능할 터다.
모든 정치의 원동력은 통치자의 사적(私的) 이해관계에 따른 계산과 조치라고 ‘독재자의 핸드북’이라는 책은 갈파했다. 통치자까진 아니어도 정치판 사람에게는 개인적 정치생명이 최우선이다. 그래도 명심하기 바란다. 금배지에 현혹돼 공수처를 허용한다면 한 번도 경험 못 한 나라를 만든 공범으로 기록된다는 사실을.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