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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 기소되기 전날 페북서 개혁 외친 부총리[광화문에서/홍수용]

입력 | 2019-10-31 03:00:00


홍수용 경제부 차장

유명 정보기술(IT) 회사 사장의 아들 A 씨는 미국 명문 공대에서 박사 학위를 땄다. 그는 국내에서 전공 분야인 인공지능(AI) 연구를 계속하고 싶었다. 여러 곳에서 제의가 왔지만 기업 안팎의 경직된 문화와 제도에 실망했다. 국내에선 마음껏 뛰기 힘들다고 본 A 씨는 재작년 미국 IT 회사에 입사했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 이후 4차 산업혁명이 유행하던 무렵 AI 인재가 한국을 떠난 것이다. 주어진 일만 기계적으로 하는 업무의 한계, 사회 통념을 넘을 수 없는 급여 수준이 문제였다. 이런 답답한 기업 문화의 뿌리에는 기업의 업무 영역과 보상 체계를 묶어두는 규제가 있다고 회사 관계자는 전했다.

AI를 중심으로 한 신기술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스스로 배우고 판단하며 능력을 키운다. 2016년 알파고의 ‘자율 기술’을 체감한 한국은 겉으로 혁신을 외치면서도 정작 변화가 다가오면 두려워하며 뒷걸음질치고 있다. 과거 산업혁명기 직전 나타났던 기술에 대한 공포가 우리 사회에선 공유경제에 대한 거부감으로 나타나고 있다. 28일 검찰이 ‘타다’를 기소한 것은 변화에 대한 사회 한쪽의 거부감이 표출된 것이다. ‘쏘카’ 이재웅 대표는 대통령이 규제의 벽을 허물어 AI 기술을 발전시키겠다고 했는데 검찰은 AI 기업가를 처벌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현실은 IT 회사 사장 아들이 미국 회사에 입사할 수밖에 없었던 2년 전에 비해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규제개혁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은 제도를 다루는 공무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강화하는 데 기술에 대한 공포를 악용하기 때문이다. ‘타다’ 기소 전날인 27일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페이스북에 “저성장이 지속되면서 변화에 따른 이해득실이 명확해졌고, 구조개혁은 누군가 손해 보는 제로섬 게임으로 인식되고, 사회적 합의와 관용이 발휘될 여지가 줄었다”고 했다. 저성장으로 사회가 각박해지다 보니 구조개혁이 잘 안되고 갈등이 커진다는 그럴듯한 논리로 사회를 관조했다. 적응적 구조개혁, 전향적 구조개혁이라는 어려운 말을 써가며 개혁을 외쳤다. 부총리가 얻어터질 각오로 이해당사자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갈등을 조정하고 노동개혁의 총대를 멨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고작 ‘공유경제는 현실적으로 기존 이해관계자와의 상생을 담은 대타협이 이뤄져야 한다’는 공허한 말로 열심히 일하는 듯 포장했을 뿐이다.

경제정책 사령탑이 헛발질을 하는 새 꼭 필요한 정책들이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 확장적 재정을 강조하는 정부는 국채 발행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하려고 금리 인하 필요성을 부각하고 있다. 돈의 힘으로 1.9%인 성장률을 2.0%로 높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겠다. 규제개혁과 노동개혁으로 기초체력을 키워야 한다는 뻔한 말을 또 해야겠다. 굳이 하나를 꼽으라면 대화의 가능성이 도무지 안 보이는 노동 쪽보다는 규제개혁에 집중하면 좋겠다. 정부는 규제개혁 브랜드로 규제 샌드박스를 내세우지만 따지고 보면 모래상자 안에서만 놀라는 것 아닌가. 그뿐 아니라 모래상자 안 기업은 상자 안에서 기득권이 되고 모래상자 밖의 기업들은 진입장벽 밖에서 좌절하는 구조도 심해지고 있다. 현실을 모른 채 페북 세상에서 말만 앞세우는 공무원으론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홍수용 경제부 차장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