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스의 죽음은 무척 유감이지만 한국인들 입장에서는 방치할 수 없었다. … 일본의 악행과 잔혹함을 조금이라도 얘기하면 미국인들은 피가 끓어 분노할 것이다.’ 대한제국 외교자문을 맡고 있던 미국인 호머 헐버트 박사(1863∼1949)의 기고였다. 일본에 우호적 분위기가 팽배했던 당시 미국에서 미국인이 스티븐스 저격을 옹호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1905년 10월 고종은 은밀히 헐버트 박사를 불렀다. 일본이 조선의 국권을 위협하고 있음을 미국 정부에 알리라는 특명이었다. 그러나 미국 조야의 분위기는 냉랭했다. 이미 석 달 전 미국이 일본과 ‘태프트-가쓰라’ 밀약을 맺고 서로 필리핀과 조선을 차지하기로 양해했기 때문이다. 조선은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이에 분개한 헐버트 박사는 가는 곳마다 “미국이 조선을 일본에 넘겼다”며 모국을 비난했고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1919년 숨지기 직전 이 사실을 시인했다. 또 헐버트 박사는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한 이준, 이상설, 이위종 특사가 을사늑약 무효를 세계에 알린 거사를 뒤에서 적극 도왔다. 이 일로 그는 조선에서 강제 추방당했다.
▷헐버트 박사를 재조명한 평전을 최근 출간한 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장은 “그의 삶은 한국사의 일부이고 한민족의 자산”이라고 말했다. 그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대한제국은 러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이 부상하는 국제 정세를 읽지 못해 망국의 비운을 맞아야 했다.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한반도 주변은 열강들의 각축장이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던 헐버트 박사의 고귀한 유지를 잘 새겨야 할 것 같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