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失政하고 총선 맞는 집권세력 좌파 인프라 지원과 현금성 복지에 국민 혈세 쏟아부으려 할 것 사상 최대 슈퍼예산도 총선용 악용 우려
이기홍 논설실장
어느 나라에 태어나느냐만큼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는 게 또 있을까. 제3세계에 태어나 가난을 벗어나려다 허망하게 죽어간 생명들도 모두 한 번뿐인 생명이었다.
국가가 가난해지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가면, 국민 개개인의 삶은 태풍에 부서지는 조각배 신세가 된다. 특히 전쟁 학살 기아 같은 국가적 재난이 닥칠 때 어린이 여성 등 사회의 약한 고리가 가장 큰 피해를 당한다.
긴 안목으로 보면 역사의 물줄기는 정의와 대의(大義)를 향해 진보한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수많은 역류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 역류의 시간, 불의(不義)의 기간은 역사의 관점에선 단기(短期)일지 몰라도 그 시대를 사는 이에겐 삶 전체를 지배하는 시간이다. 수많은 개인들이 역류에 휘말려 어이없이 생을 망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역류는 필연일까. 그렇지 않다. 근현대사는 대부분의 역류가 지도자와 정치인들의 탐욕이나 오판, 독선, 무능의 결과로 발생함을 숱하게 보여줘 왔다. 지도자가 달랐다면 피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었을 역사의 비극은 무수히 많다.
그런데 독선적 이념이나 권력욕에 사로잡혀 국민을 파멸의 길로 내몬 정치인들도 대부분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 지난달 27일 아르헨티나 대선 역시 선거에서 다수의 선택이 반드시 국가의 운명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게 이뤄지는 것은 아님을 보여줬다.
우리에겐 내년 4월 총선과 2022년 대선이 앞으로 오랫동안 한국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분기점이다.
내년 총선에서 가장 궁금한 점은 ‘경제를 망친 집권당은 중간평가 성격의 선거에서 진다’는 정치권의 ‘속설’이 유효할지 여부다. 그 속설을 현 경제상황에 대입하면 여당의 전망은 암울하기 그지없다.
그래서일까, 집권 세력이 총선 필승을 위해 투입하는 에너지는 과거 어느 정권과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막대하고, 그 방향은 두 가지 큰 축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것 같다.
하나는 좌파 인프라 강화이고, 또 하나는 현금성 복지를 확대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정부와 지자체의 위원회 등에 수많은 좌파 활동가들이 진출했다. 시민사회 단체와 협동조합 등 다양한 조직들에 권력의 떡고물이 떨어졌다. 민노총 등 거대 조직들은 몸집을 불렸고, 지자체들은 복지센터 건립 등 명분으로 거액을 지원하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동 단위마다 자치지원관이란 자리까지 만들고 있다.
이처럼 지역·직능별로 사회 전체를 촘촘히 커버할 좌파 생태계 구축의 비용은 물론 대부분 국민 세금이다. 중산층 직장인들이 “우리가 좌파활동가들 먹여 살리려고 뼈 빠지게 일해 세금을 내느냐”고 통탄하든 말든 총선에서 좌파 인프라가 가동되면 그 영향력은 막대할 수 있다.
현재의 좌파 인프라는 노무현 후보가 당선됐던 17년 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집권 세력이 의지하는 또 하나의 강력한 수단은 경제 실정(失政)의 피해자들을 달래 ‘내편’으로 붙잡아 둘 현금성 복지 확대다. 그간 이 정권이 확대해온 온갖 장려금, 지원금, 수당 등의 일회성 복지는 열거하기도 힘든 수준이다. 예산규모가 2017년 400조에서 3년 만에 513조(2020년 예산안·미확정)로 늘어날 만큼 재정이 확대됐는데 증가액 중 상당부분이 인프라 확충과 경기부양이 아니라 개인 단위에 살포되는 일회성·시혜성이다.
과거 정부 여당이 선거를 앞두고 선심성 사업을 남발하는 경우는 있었어도 이번 정부처럼 막대한 현금성 복지를 지속적으로 뿌려 온 경우는 없었다. 남미의 몰락사를 보면 이런 현금 복지는 실제로 표로 연결됐다. 하지만 대부분 국민이 고등교육을 받은 한국에서도 과연 통할까.
현금복지의 주 수혜층은 여당에는 어차피 집토끼인 경우가 많다. 상당수 중도층은 현금성 복지의 직접 수혜층은 아니다. 떡고물이 떨어지면 받긴 받아도,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며 씁쓸해한다. 그런 국민이 바로 숙의민주주의의 주역인 중산층이며, 그 나라의 민주주의 수준을 결정하는 국민이다.
선거를 앞둔 정권들이 주로 하는 건 증시와 부동산 경기 부양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경제 시스템이 너무 반대방향으로 움직여 왔다. 기업의 비용을 낮춰야 할 때 높였고, 경기가 돌아가지 못하게 족쇄가 많아졌고, 기업의 M&A와 구조조정, 인력개편은 더 어려워졌다. 이런 상태에서 증시 부양은 자금이 해외로 유출될 수 있고, 부동산 경기 활성화 정책도 택하기 어렵다.
정부 여당 입장에서 진정한 필승 대책은 경제 활성화이고 그러려면 시장 위주로 정책 기조를 바꿔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어려운 구조적 조건에 봉착해 버렸다. 여태 취해온 정책들이 정반대 방향이었으며, 그런 방향을 후견해 온 지지 세력의 틀을 깨고 정책 대전환을 하기엔 지지세력 의존도가 너무 큰 상황이다.
이 때문에 집권 세력은 그 한계가 너무도 뚜렷하고, 폐해가 너무도 클 현금성 복지와 좌파 인프라 지원에 더욱더 중독되듯 빠져들 것이다. 야당이 예산안과 온갖 기금, 공공사업 발주를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지 못하면 국민 혈세는 ‘21세기판 막걸리와 고무신’에 무한정 쏟아져 들어갈 것이다.
이기홍 논설실장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