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종 파리 특파원
매년 신입생들이 가장 먼저 찾아가는 ‘명물’이 있다. 1896년 입학생인 아인슈타인의 학창 시절 사물함이다. 그 유명한 아인슈타인의 사물함이니 박물관의 유명 소장품처럼 유리 시설 안에 넣어 소중히 보관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사물함은 그야말로 소박했다. 높이 195cm, 폭 45cm가량의 나무 사물함이 그냥 복도에 있었다. 재학생들이 쓰는 수십 개 사물함 사이에서 한참을 찾아야 검은 콧수염을 단 젊은 아인슈타인의 작은 얼굴 그림이 붙은 사물함이 보였다.
‘아인슈타인이야 천재니까 그랬겠지’란 생각은 이 학교에 유학 온 한국 학생들을 만나면서 바뀌었다. 대부분 국내 최상위권 공대 졸업자인 이들은 취리히 공대가 우수한 과학자를 계속 배출한 이유로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꼽았다. 이 학교 석·박사 과정의 40%는 외국인이지만 자국 학생과 학비 등에서 차별이 없다. 박사 과정은 7만 프랑(약 8200만 원)가량의 연봉도 받는다. 연구를 토대로 스타트업을 차리면 학교 공간을 사무실로 빌려준다. 무엇보다 한국인 유학생들은 국내에 부족한 ‘자율성’과 ‘장기적 안목’을 최대 장점으로 꼽았다.
“한국 박사 과정을 ‘노예’ 생활이라고 하잖아요. 교수와 학생은 철저한 상하관계죠. 여기선 학생이 주체적으로 연구를 이끌고, 지도교수는 막히는 부분만 풀어줍니다.”
“국내는 산학협력을 해야 연구비가 생기는데 기업들은 당장 쓸 수 있는 연구 결과만 원해서 힘들어요. 세계를 선도할 기술을 개발하려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더라도 실험적인 연구를 많이 해야 하는데도 말이죠.”
선진국들은 인공지능(AI) 로봇공학과 같은 미래기술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의 ‘세계인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인재 경쟁력 지수’는 62.32점으로 조사 대상 63개국 중 33위다.
김윤종 파리 특파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