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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비가 댓글에 흔들렸더라면…[안영식의 스포츠&]

입력 | 2019-11-01 03:00:00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출전한 여자골프 세계 최강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오륜마크 조형물을 배경으로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인비, 양희영, 박세리 감독, 김세영, 전인지. 동아일보DB

안영식 스포츠 전문기자

골프는 112년 만에 부활해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치러졌다. 그 무대에서 박인비는 여자 골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골든 커리어 그랜드슬램(올림픽 금메달+4대 메이저 우승)을 달성한 순간이었다.

당시 박인비는 리우 올림픽 개막 한 달 전까지도 손가락 인대 부상이 회복되지 않아 대회 출전 자체가 불투명했다. “성치도 않은 몸으로 올림픽에 왜 출전하려고 하느냐” “후배를 위해 출전권을 양보하라”는 등 온갖 악성 댓글에 시달렸다. 그는 “2016년은 내 인생 최고의 해인 동시에 최악의 해였다”고 회고했다.

내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박인비가 또다시 마음고생을 할 수도 있다. 올림픽이 다가올수록 리우 올림픽 직전의 ‘악몽’ 재연이 우려된다.

올림픽 골프에 출전하려면 올림픽 랭킹 60위 이내에 들어야 한다. 국제골프연맹(IGF)이 관리하는 올림픽 랭킹은 여자 선수의 경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성적이 가장 비중 있게 반영되는 세계 랭킹과 큰 차이가 없다.

세계 15위까지는 올림픽 자동 출전권을 갖지만 국가당 최다 4명까지로 제한된다. 한국은 리우 올림픽 여자골프에 가장 많은 4명이 출전한 유일한 나라였다. 당시 한국은 세계 15위 이내에 7명이나 있었다. 박인비(3위)와 김세영(5위) 양희영(6위) 전인지(8위)가 랭킹 순서대로 올림픽에 출전했다. 장하나(10위)와 유소연(12위) 이보미(14위)는 대기 선수였다. 세계 15위 이내에 진입해도 한국 선수 가운데 4위 이내에 들어야만 올림픽 출전 우선권을 가질 수 있다. ‘올림픽 금메달보다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게 더 힘들다’는 한국 양궁과 비슷하다.

한때 세계 랭킹 1위를 106주(역대 3위) 동안 굳게 지켰던 박인비는 31일 현재 세계 11위(평점 5.26)까지 밀려났다. 그래도 여전히 도쿄 올림픽 출전 사정권에 있다. 세계 1위 고진영(평점 10.41)과 2위 박성현(평점 7.67), 4위 이정은(평점 6.21)에 이어 한국 선수 중 세계 랭킹이 네 번째로 높기 때문이다.

그 뒤로 13위 김세영(평점 4.91)을 비롯해 16위 유소연(평점 4.43), 17위 김효주(평점 4.32), 18위 양희영(평점 4.22)이 추격하고 있다. 사실상 마지막 한 장 남은 올림픽 티켓을 놓고 벌일 집안싸움은 최종 엔트리 마감일인 내년 6월 29일까지 예측불허다.

여자골프 세계 랭킹은 LPGA투어 등 전 세계 8개 투어에서 거둔 성적에 따라 획득한 총점을 최근 2년간(104주) 출전한 대회 수로 나눈 평점이 결정한다. 똑같은 포인트를 추가해도 출전 대회 수가 경쟁 후배들보다 적은 박인비가 일단은 유리하다. 박인비는 지난 2년간 36개 대회에 출전한 반면 김세영은 가장 많은 53개 대회에 나섰다.

박인비는 도쿄 올림픽 분위기가 달아오를수록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 될 듯하다. 올림픽 2회 연속 우승이라는 원대한 목표는 도전만으로 큰 영광이 된다.

다만 박인비가 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하고도 리우 올림픽 때처럼 경기력에 의문부호가 붙는다면 팬덤의 악담과 비방이 나올지 모를 일이다.

지난해 투어챔피언십 우승 이전까지만 해도 타이거 우즈는 퇴물 취급을 당했다. 그런데 올해 마스터스 우승에 이어 PGA투어 최다승 타이(82승)까지 거두며 재기했다. 박인비가 온전치 못한 몸과 멘털로 리우 올림픽을 제패한 것은 감동 그 자체였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박인비가 악성 댓글에 자포자기해 리우 올림픽에 불참했다면 골든 커리어 그랜드슬램이라는 신조어는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루 앞이 어찌 될지 모르는 것이 세상사다. 부상 등 돌발 변수가 언제 튀어나올지 모를 일이다. 대한민국 골프 여걸 중 실제로 누가 도쿄 올림픽에 출전할지는 그때 가봐야 안다. ‘코리아 군단’의 선의의 경쟁과 선전을 기대한다. 이를 위해 팬덤은 더 성숙해져야 한다. 이 글이 쓸데없는 걱정이었으면 좋겠다.

안영식 스포츠 전문기자 ysa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