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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급증은 설문문항 하나 때문”이라는 황당한 통계청

입력 | 2019-11-01 03:00:00

비정규직 86만명 증가 신뢰성 논란




강신욱 통계청장

올해 8월 기준으로 비정규직이 1년 만에 86만여 명 증가한 것에 대해 통계청이 두 달 전 조사의 ‘잔상’ 때문이라는 무리한 주장을 이어감에 따라 통계 신뢰가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년 전과 설문 문항은 똑같은 데도 두 달 전 조사에서 문항 하나를 바꾼 적이 있다는 이유로 35만∼50만 명의 비정규직이 늘었다는 논리가 지나치게 근거 없는 추정이라는 것이다.

통계청은 31일에는 “통계 문항 변화로 늘어난 비정규직이 얼마인지는 알 수 없다”며 오락가락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정부 내에서도 통계청의 자의적인 해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비정규직 설문 문항 논란


지난달 29일 정부는 8월 기준 비정규직 규모가 748만1000명으로 작년 같은 달보다 86만7000명 늘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이는 설문 문항의 차이에 따른 수치상의 변동이며 실제로 비정규직이 대폭 늘어난 것은 아니라고 했다.

통계청은 기존에는 비정규직인 기간제 근로자에게만 ‘남은 고용기간’을 물었지만 올 3월과 6월에는 정규직이라고 생각하던 사람에게도 고용기간을 물었다. 이때 자신의 고용기간이 제한돼 있다고 뒤늦게 깨달은 기존 정규직이 자신을 비정규직이라고 새로 ‘자각’하기 시작했고, 이들이 8월 조사에서 자신을 비정규직이라고 답변했다는 게 통계청의 설명이다. 통계청은 이 숫자가 적게는 35만 명, 많게는 50만 명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그럼에도 새로 추가된 설문 문항 하나로 비정규직이 급증했다는 정부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말이 나온다. 이번에 비정규직 규모를 산출한 8월 조사에서는 3월, 6월 조사와 다르게 ‘추가 질문’을 하지 않아서다. 결국 정부는 1년 전과 똑같은 문항으로 설문했는데도 비정규직 차이가 50만 명이나 다르게 계산된다는 결론을 내놓은 것이다.

통계청이 스스로 생산한 통계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 통계청은 31일 기자설명회에서 “(늘어난 기간제 근로자가) 정규직에서 100% 넘어왔다고 말할 수 없다. 100%인지 0%인지는 모른다”고 했다. 질문이 변경되며 기간제 근로자가 늘어난 것으로 추정은 되지만 이들이 정규직에서 넘어온 것인지는 추가 조사를 하지 않는 한 알 수 없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정부 내에서도 도대체 통계 착시 때문에 늘어난 비정규직이 몇 명이냐는 말이 나온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통계 조사가 변한) 요소를 제외했을 때 비정규직이 30만 명 늘어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통계청이 밝힌 ‘착시’ 효과를 제외한 수치(36만7000∼51만7000명)와도 다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통계 전문가는 “통계에서 제일 중요한 게 신뢰도인데 이번 통계 논란에 정부가 명쾌한 해명을 하지 못해 논란이 커지며 다른 통계 신뢰까지 깎아먹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 정치권으로 번진 신뢰도 논란


통계청이 비정규직 증가에 대한 명확한 해석을 내놓지 못하며 정치권을 중심으로 신뢰성에 대한 의혹이 커지고 있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은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정규직 증가와 관련해 “고용예상기간을 묻는 질문은 (올해도 있었고) 2018년 8월에 이미 있었다”며 “통계청이 고용예상기간을 질문한 게 마치 처음인 것처럼 말하는데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본보가 통계청 설문을 분석한 결과 통계청이 매년 8월 진행하는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에는 유 의원의 말처럼 ‘직장에서 앞으로 얼마나 더 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나’라는 질문이 올해와 작년에 있었다. 다만 이 질문은 이미 자신이 기간제 근로자라고 답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기간제 근로자가 아닌 사람에게까지 앞으로 얼마나 더 일할 것인지 묻는 질문을 추가한 건 올해 3월과 6월, 9월뿐이다.

송언석 자유한국당 의원도 지난달 3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통계는 일관성이 중요한데 한국은행처럼 기존 기준에 따른 통계치를 추정하지도 않고 (통계청장이) 연속선상으로 보면 안 된다고만 하는 건 무책임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홍남기 부총리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강신욱 통계청장 해임을 건의할 생각이 없느냐”고 했다. 홍 부총리는 답변을 회피했다.

세종=송충현 balgun@donga.com·주애진·최혜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