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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길이지만 반드시 가야할 길…한·미 양국 특수교육 차이점은?

입력 | 2019-11-01 16:25:00


70㎡ 남짓한 교실에는 교탁도, 화이트보드도 보이질 않았다. 그 대신 사방 벽면에 각종 학습 교보재들이 눈길을 잡아끌었다. 학생마다 일대일로 배치된 교사들은 교탁 앞이 아니라 학생 옆 자리에 앉아 학생별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들은 잠시도 담당 학생에게 눈을 떼지 않았다. 학생이 식당을 찾거나 화장실을 갈 때도 단짝처럼 내내 붙어 다녔다. 야외활동도 함께 했다.

올 9월 찾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페털루마 지역의 자폐아 특수학교 ‘사이프레스 프라이머리 스쿨’의 교실 풍경이다. 미국 뇌성마비협회(UCP)가 세운 이 학교는 자폐증, 다운증후군을 겪는 이들을 위한 특수학교다. 현재 5~17세의 학생 70여 명이 이 학교를 다니고 있다. 대다수가 초등학생 나이대다.


● 통합교육은 물론 커뮤니티 적응훈련까지

사이프레스 프라이머리 스쿨의 학생 대부분은 일반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한 중증 장애 학생들이다. 일반학교의 소개로 이곳에 오게 된 학생들은 교육구의 재정 지원을 받는다. 이 곳의 특수교사인 네이선 예이츠 씨는 “일반학교에서 비장애학생과 함께 교육받는 권리를 포기하는 대신 이곳에서 교사의 일대일 맞춤수업 지원을 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세컨더리 스쿨(18~22세 대상)로 가면 학생 3명에 교사 1명이 배치된다. 교사 의존도를 점점 낮추면서 사회진출을 위한 준비하는 것.

2016년 미국 교육부의 자료에 따르면 미국 특수교육 대상(6~21세) 중 95%가량이 일반학급에서 일부 또는 전체 수업을 듣는다. 사이프레스 프라이머리 스쿨처럼 별도의 기관에서 장애학생이 따로 수업을 듣는 건 전체의 5% 남짓이다.

그럼에도 통합교육이라는 기본 원칙은 엄수되고 있다. 실제로 사이프레스 프라이머리 스쿨에서는 현재 매주 두 차례씩 인근 일반학교와 통합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일반학교의 비장애학생들이 찾아와 함께 음악, 요가, 서핑 등 수업을 듣는다. 사회적 관계 형성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이론적 학습보다는 활동 중심 수업이 주로 진행된다.

사회적 활동이 익숙하지 않은 장애학생들을 위해 수업은 가급적 여러 테이블로 나뉘어 진행된다. 심리적 압박감을 낮추기 위해서다. 로라 브리긴 교장은 “일반학교의 프로그램은 비장애학생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어 아무래도 장애학생들이 실패하기 쉽다. 이 때문에 여기에선 학생들이 무엇이든 성공을 경험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 성공이 사회생활로 이어지도록 유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합교육은 비장애학생들에게도 성장의 좋은 자양분이 된다. 예이츠 씨는 “미국 사회가 인종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는 높지만 여전히 장애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다. 비장애학생은 통합교육을 통해 ‘세상은 다양하고 모두 평등하다’는 건강한 세계관을 확립하게 된다. 이는 교사들에게도 큰 가르침이 된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통합교육을 경험한 비장애학생 중에선 나중에 자원봉사자 또는 특수교사로 다시 돌아오는 일도 적지 않다.

비장애학생과의 통합교육만 이뤄지는 건 아니다. 이곳에서는 커뮤니티 적응훈련도 병행한다. 언젠가 장애학생이 홀로 사회를 마주할 상황에 대비해 미리 경험을 해두는 것이다. 사이프레스 프라이머리 스쿨에서는 적게는 주 2회, 많게는 매일 장애학생이 담당교사와 함께 인근 가게에 가서 과제를 수행한다. 식료품점에 가서 쇼핑리스트에 맞는 품목을 사오거나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식이다. 예이츠 씨는 “언어폭력 등 차별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가게에 사전 협조를 구해놓는다. 학생의 적응정도에 따라 교사 없이 혼자 보내거나 협조를 요청하지 않은 일반 가게에 가는 훈련을 하기도 한다”고 했다.


● 어려운 길이지만 반드시 가야할 길

통합교육의 최적화 모델을 찾는 과정은 미국에서도 현재 진행형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산호세의 산타클라라 교육청에서 만난 통합교육 전문가 엘리 호는 “미국에서 통합교육은 크게 인터그레이션과 인클루전으로 나뉜다. 인터그레이션이 일반 학급에서 장애학생이 별도의 특수교육을 받는 방식을 말한다면 인클루전은 교실 안에서 모든 학생이 자기의 수준에 맞는 개별화 교육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장애학생이 따로 교육을 받는 익스클루전을 포함, 다양한 모델 중 무엇이 효율적인지는 따져 봐야하지만 궁극적인 방향은 인터그레이션으로 보고 있다.

같은 교육청의 케이시 월 통합교육 디렉터는 “통합교육은 학생이 어리면 어릴수록 쉽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어린 학생들에게 통합교육의 기회를 주면 그들은 배운다. 문제는 우리가 그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사회 또한 장애 학생을 향한 차별적인 시선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월 디렉터는 “차별 문제도 여전하지만 장애학생의 교육은 법이 보장한다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다. 지속적으로 관련 법률이 개정되면서 장애학생이 갖고 있던 제약조건이 많이 상쇄됐다. 장애학생이 교실에 들어오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됐다”고 설명했다. 2004년 기존 장애인교육법(IDEA)이 장애인교육향상법(IDEIA)으로 개정되면서 조기 중재서비스를 지원하는 등 장애 학생과 보호자의 권리가 한층 강화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수교사의 수급 문제나 학부모, 교사 등의 의식 개선 등은 미국에서도 풀어야 할 숙제로 꼽힌다.

그럼에도 장애학생의 교육은 인간의 기본권과 관련된 문제임을 거듭 강조했다. 호 씨는 “장애학생의 통합교육은 인권 및 사회적 정의와 관련돼 있다는 인식을 모두가 공유하고 있다. 완전한 통합교육으로 가는 여정은 어려운 길이지만 반드시 가야할 길”이라고 말했다.


한·미 양국 특수교육의 온도차를 보여주는 지표가 하나 있다. 바로 특수교육 대상자 중 학습장애가 차지하는 비율이다. 교육부의 ‘2019 특수교육통계’ 자료에 따르면 국내 특수교육 대상자 중 학습장애의 비율은 1.5%다. 전체 10가지 항목 중 가장 그 비율이 낮다. 반면 2016년 미국 교육부의 자료에 따르면 특정학습장애의 비율은 39.2%로 전체 7가지 항목 중 가장 높다.
단순 비교는 어렵다. 장애 영역을 구분하는 양국의 기준도 다를뿐더러 장애 자체를 결정하는 세부 기준에서도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양국의 지형도가 이처럼 확연히 다른 건 장애를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 때문이라는 평가다. 국내 한 교육계 관계자는 “장애를 바라보는 차별적 시선이 엄연히 존재하는 만큼 국내에서는 가급적 학습 장애를 장애로 인식하지 않으려는 이들이 많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만난 전문가들의 의견도 비슷했다. 산타클라라 교육청의 케이시 월 통합교육 디렉터는 “다양성에 대한 포용력을 키우기 위해선 문화적 사고방식의 전환이 필수다. 보다 정교한 진단 및 점검 기준을 세우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사이프레스 프라이머리 스쿨의 특수교사 네이선 예이츠 씨도 “장애를 바라보는 사회 시스템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 학생의 장애가 개선되면 언제든 일반학교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기관별 협력도 긴밀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 해결을 위한 고민은 이어지고 있다. 교육부 국립특수교육원 관계자는 “학습장애의 정의는 학계에서도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특수교육법에 의한 정의와 현장 진단의 어려움 등으로 현재 학습장애의 출현 비율이 낮게 나오고 있다. 정책연구를 통해 개선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안전망도 있다. 현재 교육부 교육기회보장과가 학습장애에 속하지 않은 학습 지진, 부진 학생에 대한 기초학력향상 지원을 별도로 하고 있다.

페탈루마·산호세=강홍구기자 wind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