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교집합을 찾아서![동아광장/최인아]

입력 | 2019-11-02 03:00:00

그만두겠다는 직원을 볼 때마다 맥이 풀리고 ‘툭’ 꺾이는 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해내겠단 다짐
조직과 개인은 생존과 비전을 공유… 그래서 다시 새로운 시도를 한다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회사에서 일할 때나 ‘자영업자’로 사는 지금이나 이 말은 똑같이 두렵다. 직원들이 일을 그만하겠다는 얘기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 두려운 말을 작년 여름 세 사람에게서 들었다. 그것도 거의 동시에. 오픈 2주년을 얼마 앞둔 시점에 직원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그만두겠다고 했다. 각자의 계획에 따라 누구는 대학원에 진학하고 누구는 유학을 가고 또 누구는 이직을 하게 된 것인데 공교롭게도 시기가 딱 겹쳤다. 당장 일할 사람이 없는 것도 큰일이었지만 심적인 타격도 컸다.

그만두는 직원을 붙잡고 퇴사의 이유를 묻는 것만큼 바보 같은 질문은 없지만 그래도 물어야 했다. 특히 한 친구는 준(準)공무원으로 안정적인 곳에서 일하다 온 터였다. 그런데 1년 만에 그만두겠다는 거다. 자신은 여전히 우리 책방에서 일하는 것이 좋지만 가족들이 내내 불안해했다고 했다. 과연 그 친구가 옮겨가는 데는 안정적이고 탄탄한 곳으로,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곳이었다.

맥이 풀렸다. 그렇구나, 우리 책방은 독립 책방 중에서는 웬만한 축에 들지만 아직 ‘가장의 일터’는 못 되는구나, 젊은 친구가 개성과 취향을 살려 도전해 보는 곳이지 한 집안의 생계를 맡을 만큼은 못 되는구나…. 마음속에서 굵은 가지 하나가 툭 꺾이는 느낌이었다. 한편 오기도 일었다. ‘내가 한번 해보리라, 책방도 괜찮은 일자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이리라.’ 이럴 때 조심해야 한다. 나는 그동안 오기를 부릴 때마다 뭔가를 저지르곤 했으니까. 그런데 정말로 일을 저지를 기회가 찾아왔다. 2호점을 열게 된 거다.

올봄이었다. 임대료 비싸기로 유명한 서울 강남의 고급 빌딩으로부터 입점 제의가 왔다.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잔뜩 입주해 있는 빌딩의 1층 자리였다. 그런데도 우리는 선뜻 결정하지 못했고 오히려 처음엔 거절하기까지 했다. 제안한 분들이 당황했을지도 모르겠다. 감사하다고 해야 할 판에 거절이라니…. 2016년에 책방을 열어 자영업 3년 고비를 용케 넘겼지만 책 판매는 쉽지 않았다. 책방을 하는 나조차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자꾸 늘고 사람들은 점점 더 책을 사지 않는다. 그런데 어쩌자고 책방을 또 열겠는가. 망설인 이유는 또 있다. 책방을 해보니 이 일이 얼마나 ‘가내 수공업’인지를 알겠는 거다. 매번 새로 기획해야 하고 어느 것 하나 기계로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거의 다 사람 손이 가야 한다. 하긴 그 맛과 경험 때문에 사람들이 동네 서점을 찾는 것일 테다. 디지털이 기본이 된 세상에서 ‘리얼 싱(real thing·진짜)’, 휴먼 터치를 찾아서 말이다. 문제는 이 일이 참으로 많은 노력과 시간, 체력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겨우 해나가는데 2호점을 또 할 수 있을까? 하면 제대로 잘해야 하는데! 여러 달의 논의 끝에 우리는 이런 생각에 도달했다. ‘우리 두 사람(우리 책방은 두 사람의 동업이다)만 생각하면 지금으로도 충분하지만 함께할 젊은 직원들을 생각하면 비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이런 생각의 끝에서 2호점이 결정되었다. 우리 직원들에게 무언가를 새로 만들어 가는 즐거움, 성취감을 줄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또한 책방이 괜찮은 생업이 될 수 있기를 고대하면서.

우리가 이타적이어서 이런 결정을 한 게 아니다. 책방의 생존을 위해 함께할 사람들과의 교집합을 찾은 거다. 개인과 개인이든, 조직과 개인이든 함께 일하기 위해서는 서로 간에 교집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조직은 조직대로 다른 사람보다는 그 사람을 쓰는 것이 낫고, 개인 역시 다른 데 가는 것보다 그곳에 있는 것이 낫도록 말이다. 한쪽만 이익을 보거나 상대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관계는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니까.

적지 않은 고민을 거쳤음에도 시시때때로 걱정 같은 질문이 올라온다. 2호점은 옳은 선택일까? 우리의 ‘오기’는 통할까? 아니다. 질문이 잘못되었다. 그 선택이 옳아서가 아니라 우리의 결정을 옳은 선택으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하염없이 애쓰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결실을 만들어 내는 거다. 해사한 얼굴을 내밀며 겉으로 보여주거나 소리 높여 내지르는 말이 아니라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 말을 들어야 할 사람들은 따로 있는 것 같다. 정치인들 말이다. 그래서 전한다. 우리가 당신들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이라도 애쓰라. 말이 아니라 결과로 보여 달라. 더는 국민들에게 걱정 끼치지 말고.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