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글로리아 게이너의 ‘I Will Survive’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다가왔고 다른 아이들은 나름대로 쌓아온 ‘기초 정보들’로 이 세상의 평가를 준비하고 있지. 하지만 너는 오래전부터 너의, 아니 너를 둘러싼 사람들의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못 이겨 좌절하고 멈춰버렸어. 센 척하며 저항도 하고 이 세상을 탓하며 무관심한 척도 했지만, 결국 냉정한 타인의 눈으로 자신을 직시하게 되었고 자신을 패자라 부르게 되었지.
네가 자퇴하겠다고 했을 때 나는 찬성했어. 네가 고통을 견딜 힘이 없다고, 힘을 기른 후에 다시 전쟁터에 나가야 한다고 판단했거든. 하지만 목표와 동기를 찾아야만 발전을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다는 너의 의견엔 반대했어. 혼자 힘으로 그걸 단기간에 찾기는 힘드니까. 우린 함께 고민했고 결국 너는 미래를 위해 보험처럼 졸업장을 딴다는 ‘상식적인 판단’을 했지. 그리고 그 고통스러운 시간을 잘 견뎌주었어.
용기는 두려움이 있어야 생기는 것이란다. 용기는 작은 성공들이 쌓여 자신과 세상에 대한 믿음이 커질수록 커지는 것이지. 용기는 혼자만의 힘으론 키울 수 없어. 소중한 사람과 그 사람의 사랑이 필요하지. 네가 용기가 없었던 이유는 너를 ‘제대로’ 사랑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사랑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었기 때문이지.
용기는 재능이나 지능보다는 성실성, 인내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이 더 중요하단다. 넌 고통과 두려움을 견디며 네가 목표한 그 다음을 위한 초석을 마련한 거야. 성실하게 인내하고 감정을 조절하고 열정을 지키고 나와 마음으로 연결된 것이지. 이제부터 승패나 흑백으로 구분되지 않는, 복잡하고 다양한 현실을 살며 네가 원하고 결정한 삶을 조금씩 찾아간다면 용기는 저절로 커질 거야. 글로리아 게이너도 그렇게 말하고 있어. 처음에는 두렵고 죽을 것 같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고. 내 삶을 살고, 사랑할 수 있다는 믿음을 얻었다고. 나는 잘 살아갈 것이라고, 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