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체트 이후 최대의 혼란을 야기한 것은 고작 혼잡시간대 지하철 요금 30페소(약 50원) 인상이었다. 처음엔 고교생들이 주도한 지하철 무임승차 형식의 저항 운동이었으나 산티아고 인구 500만 명 가운데 20%인 100만 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시위로 번졌다. 시위가 벌어지자 후안 안드레스 폰타이네 경제장관은 “혼잡시간대 할증 요금을 내기 싫으면 더 일찍 일어나 출근하면 된다”고 해 시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프랑스 혁명 당시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을 달라는 군중을 향해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고 했다는 망언을 연상케 한다. 실제로는 왕비를 미워한 군중이 퍼뜨린 소문이라는 게 정설이지만 어쨌든 칠레 경제장관의 발언도 두고두고 회자될 게 틀림없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은 해당 경제장관, 그리고 시위대를 ‘범죄자’라고 지칭한 자신의 사촌인 내무장관을 포함해 핵심 장관 8명을 경질하고 지하철 요금 인상도 철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됐다. 이번 혼란으로 이달 16, 17일 산티아고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세계 21개국 정상들이 모일 예정이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무산됐다. 이번 APEC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별도로 만나 1차 무역합의 서명을 하려고 한다는 뉴스로 특히 주목을 받았었다. 이제 서명 장소로 산티아고 아닌 제3의 장소가 거론되고 있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