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020년 일자리 예산 해부 따지고 보면 노인 생활보조금…사회서비스 예산 관리 안 되는데 예산은 줄곧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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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살림의 씀씀이가 커지면서 나라 빚도 크게 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수지는 -1.9%에서 -3.6%로 적자 폭이 커질 전망이고, GDP 대비 국가채무 역시 37.1%에서 39.8%로 전년 대비 2.7%p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활동이 위축된 상황에서 정부가 먼저 돈을 풀어 가계와 기업에 돈이 활발히 돌게 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이 정부가 밝힌 재정 확대 이유다.
정권 출범 초부터 ‘일자리 정부’를 공언해온 문재인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많은 예산을 일자리 사업에 쏟아붓고 있다. 2016년 14조8000억 원이던 일자리 예산은 2020년 25조8000억 원으로 4년 만에 11조 원이 증가해 74.3% 증가율을 보였다. 일자리 예산이 크게 늘면서 전체 예산에서 비중도 5.0%로 높아졌다.
먼저 직접일자리 창출은 취업 취약계층의 취업지원과 소득 보조를 위해 정부가 한시적으로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보건복지부가 시행하는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이 대표적 사업이다. 직업훈련은 실업자의 취업이나 중소기업 재직 근로자의 실업 위험 감소를 위해 직무능력 향상 훈련을 제공하는 것으로, 고용노동부(고용부)에서 ‘내일배움카드’를 운영하고 있다. 고용서비스는 취업 알선이나 직업 상담, 진로 지도 또는 노동시장 정보 제공 등을 통해 구직자의 직업 탐색과 고용주의 인력 확보를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 사업이다. 고용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취업성공패키지 지원’ 사업이 여기에 해당한다. 고용장려금은 취업 취약계층의 채용을 촉진하고, 실직 위험이 있는 재직자의 계속 고용을 지원하고자 정부가 사업주에게 고용창출장려금을 지원하는 것이다. 창업지원은 실직자 등 취업 취약계층이 창업을 통해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융자 또는 컨설팅을 제공하는 사업으로,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운용하는 창업기업자금이 여기에 속한다. 실업소득 유지 및 지원은 실직자의 임금 보전을 지원하는 것으로, 고용부가 구직급여 형태로 지급한다.
예산안 심사 앞둔 야권, 정부 일자리 예산 ‘현미경 심사’ 예고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일자리 예산 25조8000억 원을 포함한 내년도 ‘슈퍼예산안’을 두고 여야의 기 싸움이 시작됐다. 10월 28일 국회예산정책처 ‘2020년도 예산안 토론회’에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 소속 각 당 간사들은 입장 차만 재확인했다. 토론회 이틀 뒤인 30일 열린 예결위 전체회의는 자유한국당의 경제정책 기조 ‘민부론’을 둘러싼 때아닌 공방 끝에 파행으로 치달았다. 정부 예산안에 대한 현미경 심사를 벼르고 있는 야권의 입장을 들어봤다.
자유한국당은 정부의 일자리 예산안이 실제 고용 증대 효과가 없을뿐더러 재정건전성마저 악화할 수 있다며 ‘꼼꼼한 심사’를 예고했다. 예결위 간사를 맡고 있는 자유한국당 이종배 의원은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정책에 따라 고용지표는 물론 경제상황까지 악화되자 정부가 ‘초(超)슈퍼예산’을 꺼내 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8월 실업률이 3%를 기록해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1%p 감소했지만 정부가 세금으로 만든 단기 일자리가 늘어난 데 따른 착시효과에 가깝다는 것. 이 의원은 “일자리 예산안 각론을 살펴보면 소규모 인력을 단기간 고용하는 등 내실 있는 일자리 창출로 보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덧붙였다.
바른미래당도 이번 예산안이 건강한 일자리 확보보다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둔 ‘선심성 예산’ 아니냐는 입장이다. 바른미래당 예결위 간사인 지상욱 의원은 “선거를 앞두고 지속가능성이 낮은 ‘예산 나눠주기’ 식의 선심성 일자리 정책이 많다. 노동시장 안정성마저 저해할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지 의원은 “기업 경쟁력 제고를 통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수 있는 연구개발비 지원 등 내실 있는 예산은 인정하되, 선거를 의식한 현금 살포 식 일자리 예산은 과감히 삭감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일자리 예산 4년 만에 74.3% 증가
9월 24일 오후 경기 군포시 당정역 야외광장에서 열린 ‘2019 경기도 중장년 일자리 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채용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그렇다면 어디서 그 많은 일자리가 늘어난 것일까. 취업자가 두드러지게 증가한 분야는 단기 및 노인 취업자가 많은 보건업과 사회복지서비스업이었다. 이 분야에서는 17만 명이 새로 일자리를 찾았다. 숙박 및 음식점업도 취업자가 7만9000명 증가했다.
더욱이 연령별 취업자 현황을 살펴보면 고용의 질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50대 이상 고연령층은 취업자 증가폭이 49만9000명이었지만, 40대는 17만9000명이 줄었고 30대도 1만3000명 감소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8월 근로형태별 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정규직 근로자가 748만1000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270만 명 수준이던 시간제 근로자는 올해 315만 명으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일자리를 크게 늘렸지만 대부분 시간제, 비정규직 일자리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생활보조금 주는 단기 일자리에 급급
세금으로 일자리를 늘리는 직접일자리 사업은 정부가 마중물 역할을 해 고용 악화에 대비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고용 안정 측면에서는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지속가능한 고용 유지를 위해서는 직업훈련을 통해 구직자 스스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능력을 배양해주거나 창업을 통해 스스로 일자리를 만들도록 지원해주는 것이 궁극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일자리 예산에서 직업훈련 지원의 비중은 2016년 13.5%에서 내년에는 8.9%로 크게 줄어든다. 창업지원 예산도 2017년 13.8%에서 내년에는 9.2%로 비중이 감소한다. 시간이 걸리는 일자리 창출보다 세금으로 임금을 직접 지급해 단기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정부가 더 열심인 셈이다. 전문가들이 “정부의 직접일자리 예산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예산이라기보다 노인들의 생활보조금에 가깝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특히 경제 전문가들은 일자리 예산의 급격한 확대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매년 증가하는 일자리 예산이 국가 재정에 부담이 될 뿐 아니라, 예산을 투입한 만큼 성과를 내지 못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의 재정 지출을 놓고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 하는 논쟁이 벌어지는데, 국민이 원하는 것은 크든 작든 스마트한 정부”라며 “쓸 돈을 쓰되 효과적으로 지출하는 정책 설계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한 정부의 노력이 매우 미진하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은퇴자에게는 기존 경력을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맞춤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노인 일자리는 대부분 단순노무에 그친다. 조 교수는 “소득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복지성 일자리 예산이 증가하는 것은 정부 예산을 공평하게 집행해야 한다는 국민적 기대에도 어긋나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 일자리 예산은 사실상 복지 예산으로, 반짝 효과에 그치고 만다”며 “결국 민간에서 투자와 고용을 유발하는 쪽으로 일자리 예산을 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투입으로 고용률 등 몇몇 지표가 개선됐음에도 국민이 경제여건이 나아졌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일자리 예산이 효과적으로 쓰이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얘기다.
급속한 고령화와 여전히 부족한 사회안전망을 고려할 때 직접일자리 예산을 늘려 노인 빈곤 문제를 해소하고자 하는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이와 관련해 유경준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정부가 사회안전망 강화 노력에도 동시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연금 보장 수준 확대, 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 등이 마련되지 않으면 이러한 복지정책을 사실상 대체하는 일자리 예산은 해가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결국 핵심은 사회보장 보험료 인상”이라며 “정부가 장기적인 청사진을 갖고 적극적으로 국민을 설득해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청년 일자리 정책이 직업훈련보다 복지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청년을 대상으로 한 정부 지원이 실질적인 일자리와 연결되지 않으면 이는 곧 국가 인적자원의 훼손이나 마찬가지로,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더욱이 정부가 밝힌 일자리 예산 가운데 약 40%는 일자리를 만들거나 유지하는 데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의 임금 보전에 쓰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자리 예산이라기보다 사실상 복지 예산인 셈이다. 내년 실업소득 유지 및 지원에 정부는 올해보다 2조4470억 원 증가한 10조3609억 원을 편성했다. 이 가운데 9조5158억 원이 구직급여다.
실직자 위해 일자리 예산 40% 퍼부어
구직급여가 크게 증가하면서 주요 재원 구실을 하는 고용보험기금의 재정수지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10월 1일 고용보험료율을 1.3%에서 1.6%로 인상해 고용보험기금 실업급여 계정 수입은 전년 대비 1조2631억 원 증가했다. 하지만 구직급여 수급자 증가로 지출액이 전년 대비 2조1094억 원으로 더 많이 늘어났다. 현 추세대로 구직급여 수급자가 증가할 경우 일자리 예산의 주요 재원인 고용보험기금의 재정건전성 악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그뿐 아니라 정부가 새해 예산안에서 밝힌 직접일자리 예산 2조9242억 원 외에도 ‘일자리정책 5년 로드맵’에 따라 공공부문 일자리 증원에 막대한 예산이 추가로 투입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어디에 얼마의 예산이 투입되고 있는지 총량 관리가 이뤄지지 않아 정부의 재정 투입 효과를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예산안 총괄 분석보고서에서 “정부는 2020년도 예산안 개요에서 ‘일자리 지원’의 일환으로 재정지원 일자리 예산(25조8000억 원)과 함께 돌봄, 안전 등 사회서비스 일자리 9만6000개 확대를 함께 설명하고 있다”며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에 소요되는 예산은 재정지원 일자리 예산안과 별도로 관리되며, 재정 투입 규모가 관리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내년 일자리 예산 규모를 25조8000억 원이라고 발표했지만 사회서비스 일자리에 투입되는 재정까지 포함할 경우 더 많은 예산이 일자리 창출에 쓰일 수 있다는 얘기다. 사회서비스 일자리는 △보육, 아동, 장애인, 노인 보호 등 사회복지 △간병, 간호의 보건의료 △방과후 활동과 특수교육 등 교육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등 문화시설 운영 △환경, 안전, 공공행정서비스 분야 등에 종사하는 인원을 포함한 것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사회서비스 일자리에 소요되는 재정 규모가 파악되지 않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부의 재정 투입 전체 규모가 축소돼 보이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12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