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불면의 탈출구, ‘디지털 명상’이 뜬다

혜민 스님 참여 앱, 11만 가입자 확보…“평소 연습해둬야 숙면에 도움”

사진 제공 · 캄

취업준비생 김현영(26·여) 씨는 요즘 밤마다 ‘디지털 명상’을 한다. 스마트폰에서 명상 애플리케이션(앱) ‘코끼리’를 실행해 명상 강연이나 음악을 틀어놓고 눈을 감는다. 그가 명상 앱을 찾는 이유는 취업 걱정에 새벽까지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아졌기 때문. 그는 “어려서부터 똑똑하다는 얘기를 많이 듣고 자랐다. 좋은 회사에 취직하는 데 실패해 주변으로부터 ‘그 정도 직장밖에 못 구했느냐’는 얘기를 들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잠이 쉽게 오지 않는다”면서 “디지털 명상으로 스트레스가 완전히 해소되는 것은 아니지만, 긴장감이 완화되는 효과를 느낀다. 억지로 잠든 날보다 수면의 질도 높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숙면 원하는 이들이 지갑 열어

명상 애플리케이션 ‘코끼리’의 메인 화면. [사진 제공 · 마음수업]

미란다 커, 지젤 번천 같은 해외 셀러브리티가 자신의 명상 사진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종종 공개하는 모습은 이미 익숙한 일상이다. 고(故) 스티브 잡스가 유년 시절부터 명상을 해왔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고, 최근에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도 명상을 즐겨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은 2007년부터 ‘내면 검색(Search Inside Yourself)’ 프로그램을 자체 개발해 직원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매년 ‘위즈덤 2.0’이라는 명상 콘퍼런스가 정보기술(IT) 업계 종사자들의 높은 호응 속에서 인기리에 개최되고 있기도 하다.

미국 내 ‘명상 바람’은 스마트폰으로도 깊숙이 들어왔다. 빌 게이츠에게 명상을 전수한 것으로 알려진 ‘헤드스페이스(Headspace)’는 전 세계 3000만 명의 이용자를 확보했으며, ‘캄(Calm)’은 최근 8800만 달러(약 1026억 원) 투자를 유치해 슬립테크(SleepTech) 분야 최초의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 원 이상인 스타트업)으로 등극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앱 장터에 등록된 명상 앱이 2000개가 넘는다.

한국에서도 명상 앱 시장이 서서히 달아오르는 분위기다. 2016년 첫선을 보인 ‘마보’가 가입자 10만 명을 확보한 데 이어 올해 8월 중순 출시된 ‘코끼리’ 앱이 석 달도 안 돼 11만 가입자를 확보했다. ‘코끼리’는 혜민 스님이 헤드티처(Head Teacher)로 참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출시 초반부터 화제를 모았다. ‘코끼리’ 서비스를 운영하는 ㈜마음수업 관계자는 “혜민 스님 덕을 본 것은 사실이지만, 인터넷에 ‘숙면’ ‘불면증’ 같은 키워드로 검색해 들어오는 가입자 비중도 꽤 높다”며 “최근 스트레스 관리와 숙면에 대한 높은 관심이 ‘나 홀로’ 문화와 맞물리면서 디지털 명상이 널리 확산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캄도 최근 ‘삼성헬스(Samsung Health)’와 파트너십을 맺고 한국어 서비스를 개시하며 본격적인 한국 진출에 나섰다.

디지털 명상의 확산은 이러한 서비스에 소비자 지갑이 열리고 있는 것에서도 확인된다. ‘코끼리’에 무료 회원가입을 한 뒤 유료결제를 하는 비율은 5% 남짓. 유료 전환율이 1%만 돼도 사업성이 높다고 평가되는 스타트업계에서 명상 앱이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명상 서비스가 이론적 기반으로 삼는 것은 존 카밧진 미국 매사추세츠대 의과대학 명예교수가 개발한 ‘마음챙김(mindfulness) 명상’. 카밧진은 “현재의 순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경우 우리 마음속 깊이 잠재해 있는 두려움과 불안감이 살아나 무의식적이고 습관적인 행동들을 하게 되면서 각종 문제들이 발생한다”며 개인적 판단을 개입시키지 않고 자의적으로 현재의 순간에 집중하는 명상을 역설한다. 이러한 마음챙김 명상은 불교 수행자들이 주로 하던 참선(參禪)의 문턱을 대중적으로 낮춘 것으로 평가된다.

운전 중 명상 음악은 위험…유산소운동 곁들여야

디지털 명상을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명상 앱을 실행해 명상 수업이 지시하는 대로 따라 하거나 명상 음악을 틀어놓고 몸을 이완한다. ‘코끼리’의 명상 수업 중 ‘잠으로 안내하는 바디스캔 명상’(37분 19초)을 선택하면 잔잔한 음악과 함께 여성의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이부자리 위에 편안하게 누워봅니다. 두 눈은 지그시 감고, 양다리는 힘을 빼고 좀 벌려서 툭 내려놓습니다. (중략) 억지로 길게 숨을 쉬려고 애쓰지 말고 그저 자연스럽게 자신의 리듬을 타세요. 밀물과 썰물이 빠져나가듯이 여기에서까지 뭘 잘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아는 것, 그것이 소중합니다’ 하며 명상을 안내한다. 김현영 씨는 “예전에 헤드스페이스 명상 앱을 이용한 적이 있는데, 영어 콘텐츠라 아무래도 집중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며 “한국어로 된 명상 콘텐츠가 훨씬 더 편하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최근 명상이 스트레스 관리는 물론, 우울증과 불면증 같은 정신과적 증상에도 효과가 있다는 과학적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미국 위스콘신대는 명상을 하면 행복감을 느끼는 전두엽이 활성화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이 같은 명상 효과에 국내 의학계도 2017년 설립된 대한명상의학회를 중심으로 명상에 관한 이론 연구 및 명상 수련, 명상을 활용한 치료법 개발 등을 진행하고 있다. 대한명상의학회 간행이사를 맡고 있는 이화영 순천향대 천안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명상 초보자는 명상 음악에 과도하게 몰입하기 쉬운 만큼 운전하거나 길을 걷는 중에 명상 음악을 듣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며 “평소 명상 훈련을 해둬야 정말 잠이 오지 않을 때 명상 효과를 볼 수 있다. 먼저 오프라인 교육 프로그램에서 명상법을 배운 뒤 집에서 혼자 디지털 명상을 하길 권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산책 같은 가벼운 유산소운동을 한 뒤 명상을 하는 것이 숙면에 더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국내 명상 앱, 어떤 게 있나

코끼리
혜민 스님이 헤드티처로 참여한다. 혜민 스님의 명상 강연 ‘매일 명상’을 하루 한 편씩 제공한다. 11월 초 현재 ‘명상’ 150여 편, ‘수업’ 100여 편, ‘음악’ 50여 편이 업로드돼 있다. ‘수업’은 곽정은 작가, 장재열 청춘상담소 소장을 비롯한 전문가의 사랑, 자존감, 행복, 부모와 화해 등을 주제로 한 강연 콘텐츠다. 7일간 무료며 이후 구독료는 1개월 4900원, 1년 2만9000원.

마보
구글의 내면검색 프로그램을 국내에 도입한 유정은 마보 대표가 만든 명상 앱. 우선 7일간 기초 훈련으로 명상을 익히도록 안내한다. 불안할 때, 우울할 때, 면접이나 발표를 앞뒀을 때 등으로 카테고리를 나눠 자신의 기분과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게 했다. 다른 명상 앱과 달리 마보에서는 이용자가 명상 후 소감을 남길 수 있다. 7일간 무료며 이후 구독료는 1개월 3700원, 1년 2만6400원.

삼성헬스×캄
삼성헬스 앱 ‘건강 콘텐츠’ 코너에서 ‘마음챙김’ 아이콘을 선택하면 캄이 제공하는 명상 콘텐츠로 연결된다. △명상 △수면스토리 △음악으로 카테고리를 나눠 콘텐츠를 제공하며 타이머 맞춤, 갤럭시 워치와 연동 기능도 있다. 명상과 수면 스토리를 포함해 모든 콘텐츠는 한국어로 서비스된다. 7일간 무료며 삼성헬스를 통해 1년 구독을 신청할 경우 정가 59.99달러에서 할인된 49.99달러.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12호에 실렸습니다]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