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임재영 기자 ‘레위니옹 166km 울트라 트레일러닝’ 도전기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동쪽 프랑스 자치령인 레위니옹 섬에서 열린 166km 울트라 트레일러닝에 참가한 본보 임재영 기자가 지난달 20일(현지 시간) 태극기를 흔들며 결승선으로 들어오고 있다. 선수들은 협곡과 절벽을 여러 차례 오르내리는 고난도 코스에서 한계에 도전하는 레이스를 펼쳤다. 레위니옹=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레위니옹은 아프리카 남동부 마다가스카르 동쪽에 위치한 프랑스령 섬으로 트레일러닝 대회인 ‘그랑 레드(Grand Raid)’가 지난달 17일부터 20일까지 열렸다. 이 대회 메인 종목인 ‘디아고날 데 푸(Diagonale des Fous)’는 166km 레이스로, 세계 10대 울트라 트레일러닝 대회 가운데 하나다. 기자는 직접 이 종목에 참가해 걷고 달리며 온몸으로 레위니옹의 웅장함을 경험했다.
○ 고난도 울트라 트레일러닝 대회
레이스 출발 신호와 함께 꼬리를 문 선수들의 행렬이 생피에르 라빈 블랑슈 해안 도로에서 펼쳐졌다. 코스 옆에는 레위니옹 주민과 선수 지인들이 외치는 프랑스어 응원 구호인 ‘알리, 알리’ 소리와 함께 다양한 관악기, 아프리카 리듬의 타악기 소리로 가득했다. 산간 쪽으로 방향을 틀어 오르막이 이어지는 가운데 자정을 넘긴 시간에도 사탕수수 농장 마을 주민들이 나와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마을을 벗어난 뒤 선수들이 머리에 착용한 랜턴 불빛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해발 1m에서 2100m까지 39km에 이르는 길은 쉼 없는 오르막이다. 그사이 해가 떠오르면서 어둠에 가려졌던 거대한 화산 분화구 협곡이 모습을 드러냈다. 발아래 시가지로 해가 비치고 양지가 넓어지는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는 고난도 코스로 해발 2000m가량의 정상을 5번을 지나야 했다.
○ 제주와 비슷한 풍경의 화산섬 레이스
50km 지점을 지나는 길에 갑자기 낯익은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눈 주변이 흰색인 귀여운 동박새였다. 제주의 텃새이기도 한 동박새를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레위니옹은 화산섬인 제주와 많이 닮았다. 분화구는 제주의 오름(작은 화산체)과 비슷했고 삼나무 숲, 길가에 핀 개망초, 비파나무, 고비고사리 등도 너무나 익숙했다. 특히 레이스 내내 발을 괴롭혔던 돌길은 한라산국립공원 탐방로나 둘레길 바닥과 다를 바 없었다. 토심이 얕아서 나무뿌리가 그대로 드러난 것도 비슷했다.
험악한 코스보다도 밀려드는 졸음과 싸우는 게 더 힘들었다. 깜빡 졸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위험이 있는 좁은 능선을 지날 때는 뺨을 수없이 때리고 꼬집었다. 환각과 환청 증상을 경험한 것도 이때였다.
○ 졸음과 체력 한계를 이겨낸 완주
최대 고비로 여겼던 마이도를 넘고서야 코스 옆에서 쪽잠을 청했다. 알람을 맞춰 둔 휴대전화에서 울리는 진동에 잠을 깼다. 깨어난 순간 멍한 상태였다가 3, 4분이 지나서야 레이스를 위해 레위니옹에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섬주섬 장비를 챙기고 코스에 들어서자 모든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정신이 또렷해졌다. 40분의 쪽잠을 자고 나서인지 몸도 훨씬 가벼워졌다. 120km 지점을 지나면서부터는 코스 옆에 쪽잠을 자는 선수들이 부지기수였다.
140km 지점을 통과하자 완주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약도에 그려진 남은 구간은 그리 높지 않아 다소 편할 것으로 여겨졌다. ‘이제 거의 다 온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상황은 반대로 전개됐다. 몸은 더욱 지쳐 갔다. 이런 예단이 종반 레이스를 힘들게 한 화근이었다. 어둠이 깃든 종반 코스는 사람이 깔아놓은 돌을 밟아서 가는 길이었다. 2, 3km 정도려니 생각했는데 무려 8km가량 꾸불꾸불 이어진 오르막이었다. 1700년대 레위니옹에 처음 만든 길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 그 딱딱함으로 인해 발바닥과 무릎의 통증이 더해졌다.
세 번의 밤과 세 번의 아침을 맞이하고 나서야 기나긴 레이스를 끝냈다. 시원해지는가 싶더니 추워지고, 따뜻해지는가 싶더니 더워지는 날씨였지만 비를 맞지 않은 것만은 천만다행이었다. 화산 활동이 만든 경이로운 자연 경관, 그 속에서 삶을 만들어 가는 사람의 속살을 체험한 귀중한 시간이었다.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바닥까지 탈탈 털어내는 고난도 코스와 장엄한 경관은 세계에서 도전자를 끌어들이는 마력과도 같았다.
로베르 시코 그랑 레드 조직위원장은 “1989년 처음 대회가 열린 이후 코스 거리가 늘어나고 참가자도 매년 늘고 있다”며 “레위니옹의 자연을 즐기면서 자신의 한계를 시험할 수 있는 도전적인 대회로 축제처럼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레위니옹=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