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애라 작가·필명 가랑비메이커
―기영석 ‘사라지는 게 아름다움이라면 너는 아름다움이 된 걸까’
사랑의 의미를 찾기 위해 꽤나 오래 앓았다. 사랑이란 단어 앞에 언제나 힘없는 표정으로 한 발자국 물러서야 했던 내게 사랑은 가장 위태로운 앎과 감이었다. TV 속과 거리에 사랑(이라는 말)은 넘쳐났지만 그 두 음절에 익숙해지기는커녕 도리어 더 멀게 느껴졌다. 당신들에게는 만연한데 내게만 없는 것 같은 소외감과 이토록 쉽게 뱉어도 되는 것인가 하는 경외감이 그 거리감의 원천이다.
아름다운 벤치에 앉아 남녀가 마주 보며 빵을 나누어 먹는 장면과 둘의 심장 소리가 사랑으로 포착되는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는 홀로 부스러기를 줍는 누군가의 굽은 등은 쓸쓸하고 초라하게 비칠지 모른다. 그러나 꼿꼿한 등을 구부리는 동력, 덩어리를 삼킨 자리에서 잔 부스러기까지 손가락으로 찍어 모으는 태도, 이것은 분명 사랑이다. ‘사랑하기에’라는 전제로 행동하는 마음, 단맛의 기쁨 이후의 몫까지 끌어안고 가는 것.
나를 대변해주는 문장을 발견하니 오랜 시간 사랑이라는 단어로부터 느꼈던 소외감과 경외감이 조금도 아깝거나 억울하지 않다. 그저 사랑이라는 단단한 태도를 만들어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훈련이 필요할지 생각해볼 뿐이다.
고애라 작가·필명 가랑비메이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