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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한 한국판 블프[현장에서/신희철]

입력 | 2019-11-04 03:00:00


코리아세일페스타가 개막한 지난 주말 서울의 한 백화점. 동아일보DB

신희철 산업2부 기자

“코리아세일페스타(코세페)요? 들어보긴 했는데 잘 모르겠어요.”

‘미국 블랙프라이데이’를 모방한 코세페가 개막한 1일,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만난 최모 씨(32·여)의 반응이다. 평소 명품부터 중저가 브랜드까지 다양하게 구입하며 할인 정보를 꼼꼼하게 챙긴다는 그였다.

최씨는 ‘올해 코세페에선 백화점 할인이 없다’는 사실을 듣고선 “의미 없는 행사 같다”고 말했다. 예년과 달리 올해 백화점 업계는 코세페를 위해 신상품 세일을 하지 않는다. 일부 이월상품 할인 및 경품 이벤트만 할 뿐이다. 코세페 경품 안내판이 에스컬레이터 인근에 설치됐지만, A4 용지만 한 크기로 눈에 띄지 않았다.

2015년부터 매년 범정부 차원에서 열리고 있는 코세페는 업계의 환영을 받지 못했다. 행사가 매번 가을·겨울 신상품 출시 직후 열리다 보니 신상품을 싸게 팔아야 하는 업체엔 손해였다. 그래서 업체들이 졸속으로 등 떠밀리듯 참여한다는 평가가 많았다.

특히 올해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규모유통업 분야의 특약매입거래에 관한 부당성 심사지침’을 시행하기로 하면서 백화점 업계의 참여 의지마저 꺾었다. 새 지침의 시행일은 코세페 시작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부터였다. 이 지침에 따르면 공정위는 광고비 등으로 한정했던 판촉비에 ‘가격할인분’을 포함하면서 공동 할인행사 때 백화점이 할인된 가격의 절반 이상을 부담하도록 했다. 백화점이 가격 할인에 따른 부담을 입점업체에 떠넘기는 ‘갑질’을 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백화점 업계는 반발했다. ‘적자를 보거나 법을 위반할 수 있다’며 코세페에서 할인을 하지 않기로 했다. 뒤늦게 공정위가 새 지침의 시행일을 2개월 후인 내년 1월로 유예하기로 했지만 백화점 업계는 할인행사에 동참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

백화점 업계는 코세페 이후가 더 걱정이라고 토로한다. 새 지침이 내년부터 시행되면 앞으로 백화점의 정기세일은 폐지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입점업체에 받는 판매수수료보다 할인 부담분이 높으면 적자를 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공정위는 예외적으로 입점업체가 자발적으로 요청해 차별화되는 판촉행사에 참여하면 상호 간에 판촉비 부담 비율을 정할 수 있게 했지만 ‘자발성’과 ‘차별성’의 기준이 너무 모호하다”고 비판했다.

이 지침의 수혜자가 될 줄 알았던 입점업체마저 공정위 지침대로라면 백화점과 입점업체 모두 피해를 보게 된다고 지적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코세페를 통해 행사 목적인 내수 진작은커녕 규제 일변도의 정부 정책만 재확인했다고 비판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성공적인 코세페를 위해 주최 측과 유통사, 제조사가 6개월 이상 머리를 맞대도 부족한데 할인 규제까지 생기면 누가 내년 행사에 참가하겠냐”고 말했다.

신희철 산업2부 기자 hc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