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아베 환담]13개월 만에 대화… 관계개선 물꼬
손 맞잡은 아세안+3 정상들 문재인 대통령이 4일(현지 시간) 태국 방콕에서 열린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정상회의에 참석해 각국 정상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RCEP는 아세안 10개국과 한국 중국 호주 일본 인도 뉴질랜드 등 16개 국가가 참여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자유무역협정으로 협상 시작 7년 만에 타결됐다. 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오른쪽에서 여섯 번째)가 나란히 서서 손을 붙잡고 있다. 방콕=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그러나 4일(현지 시간) 태국 방콕에서 한일 정상이 13개월 만에 전격적으로 회동을 갖게 되면서 악화일로를 걷던 한일 관계가 반전의 계기를 찾을 수 있게 됐다. 특히 다음 달 중국에서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정식으로 회담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전날 만찬장에서 악수를 한 한일 정상은 이날 11분에 걸쳐 환담을 나눴다. 청와대는 “양 정상은 한일 관계가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며 양국 현안은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그간 문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제기해 온 ‘대화를 통한 갈등 해결’에 아베 신조 총리도 직접 동의의 뜻을 밝힌 것이다.
당초 아베 총리는 지난달 이낙연 국무총리가 문 대통령의 친서를 들고 특사로 방문했을 당시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 당국 간 의사소통을 계속해 나가자”고 했었다. 그러면서도 “두 정상이 만나시면 좋겠다”는 이 총리의 제의에 아베 총리는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 회동에서는 아베 총리가 문 대통령에게 외교 당국을 뛰어넘는 고위급 대화 아이디어에 긍정적인 반응을 내놓은 것이다.
청와대는 아베 총리가 말한 ‘모든 가능한 방법’에는 정상 간 회동이 포함되는 것으로 보고 본격적으로 12월 한일 정상회담 조율에 나설 태세다. 청와대 관계자는 “아베 총리가 문 대통령의 대화 제의를 수락하고 함께 앉았다는 것은 그간의 태도가 조금이라도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며 “결과는 두고 봐야겠지만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는 계기가 형성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일 관계 복원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만만치 않다. 당장 한일 갈등의 단초가 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를 두고 양국은 1년 넘게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이날 회동에서 아베 총리가 징용 문제에 대한 일본의 입장을 전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나선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 정상이 이날 ‘톱다운’ 방식의 해결 가능성을 열어둔 것은 갈등의 장기화가 양국 모두에 부담이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이 한국인 관광객 감소로 지역 경제 침체 문제에 처한 가운데 청와대는 지소미아 복원을 바라는 미국으로부터 적잖은 압력을 받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특사로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 참석한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35분간 접견하고 한일 관계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지소미아와 한미 방위비 분담금 등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가 전달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 자리에는 미국 측에서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우리 측에선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양국 외교안보 핵심 인사들이 총출동했다.
방콕=한상준 alwaysj@donga.com / 박효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