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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다 센 공정위 ‘일감 몰아주기’ 지침, 재계 “기준 불명확… 걸면 다걸려” 반발

입력 | 2019-11-05 03:00:00

이달 시행계획 ‘심사지침’ 논란




공정거래위원회가 ‘일감 몰아주기 심사지침(안)’을 이달 중 확정하고 시행하려 하자 산업계가 반발하고 있다. ‘대기업이 제3자를 매개로 간접적으로 총수 개인회사에 일감을 몰아줘도 처벌 대상으로 삼는다’는 내용이 심사지침에 포함되는 등 상위법(공정거래법)보다 강력한 규제가 행정규칙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4일 공정위와 산업계에 따르면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 등은 공정위의 일감 몰아주기 심사지침 초안에 대한 검토의견을 공정위에 제출했다. 상당수 기업들이 심사지침에 대해 “공정거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것보다 규제 범위가 크고, 여전히 기준이 불명확하며, 판례와 어긋난 기준이 도입됐다”고 우려하고 있어 반대 의견을 제출했다는 게 한경연 측의 설명이다.


○ “상위법보다 규제 강해져”

산업계가 우려하고 있는 심사지침은 지난달 공정위가 용역보고서와 함께 공개한 잠정안이다.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총수 일가의 부당한 이익제공 행위를 심사할 수 있는 구체적인 지침을 만들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른바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공정거래법 23조의 2에서 규정하고 있는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등 금지’에 근거하고 있다.

재계는 이번에 공개된 행정규칙인 심사지침에 더 강한 규제가 들어있다는 점을 특히 우려하고 있다. 대표적인 지침이 ‘제3자를 매개로 한 간접 거래도 이익제공행위 범위에 포함한다’는 것이다. 공정거래법은 규제 대상으로 ‘공시대상기업집단소속 회사(대기업)’, ‘특수관계인(총수 일가)’, ‘특수관계인이 일정 지분 비율 보유한 계열회사(계열사)’로 규정하고 있다. 제3자에 대한 언급은 없다.

유정주 한경연 기업혁신팀장은 “상위법이 규제대상을 명시하고 있는데 하위법령인 심사지침에 규제대상을 확대하는 것은 위임입법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라며 “많은 기업이 복잡한 업무를 다 맡을 수 없어 용역거래를 주는 경우가 많다. 사실상 공정위가 계열사 간 거래 뿐 아니라 모든 거래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 판례와도 달라… “걸면 걸린다”

심사지침이 판례와 다르다는 주장도 나온다. 공정위가 ‘일감 몰아주기’ 과징금을 처음 부과한 한진그룹은 과징금 처분에 반발해 2016년 소송전에 들어갔다. 공정위는 대한항공이 총수 일가가 100% 지분을 보유한 싸이버스카이 등에 ‘정상거래’할 때보다 높은 가격을 쳐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017년 9월 서울고등법원은 한진의 손을 들어주며 공정위가 정상거래 가격을 내놓지 못한 데다 싸이버스카이가 대한항공과 거래를 통해 얻은 수입이 전체의 0.5%에 불과한 만큼 경제력 집중에 따른 ‘공정거래 저해성’이 없다고 봤다. 또 고법은 저해성 입증은 공정위가 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책임을 덜기 위해 ‘총수 일가가 한 푼이라도 부당 이득을 취했다면 입증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조항을 심사지침에 담았다. 또 대법원이 제시한 정상가격에 대한 판례와 달리 입법 취지가 다른 국제조세조정법에 나온 가격을 정상가격 산정 기준으로 심사지침에 넣었다.

김현수 kimhs@donga.com·허동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