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학원으로 부모와 다투는 아이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대부분의 부모는 어떤 학원에 보내면 아이 성적이 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밀어붙인다. 아이와 타협과 조율을 하지 않는다. 아마도 부모의 판단대로 하는 것이 아이에게 가장 좋고, 그 좋은 것을 아이에게 빨리 주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학원을 결정하면 결과가 아무리 좋더라도 아이는 배려 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다니는 내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 학원에 다니는 것이 학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느껴도 학원에 가기 싫을 수 있다. 자꾸 늦거나 빠질 수도 있다.
학원에 보낼 때는 아이에게 필요한지 꼭 물어봐야 한다. 부모들은 “물어보면 아이가 하겠다고 하나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성적이 나쁜 아이라도 이 절차는 반드시 필요하다. “혼자 공부할 수 있겠니? 지금 학교에서 배우는 것으로 충분하니?”라고 물어본다. 아이가 “아니요”라고 답하면 “혹시 다녀보고 싶은 곳 있니?”라고 묻는다. “친구가 다니는 학원에 같이 다닐게요”라고 할 수 있다. 아주 이상한 곳이 아니면 허락한다. 아이가 없다고 하면 “친구들 사이에서 평이 좋은 곳으로 알아봐. 엄마도 한번 알아보마”라고 해야 한다. 그리고 아이에게 하루 이틀 알아볼 시간을 준다. 그 시간 동안 엄마는 학원을 알아봤지만 아이는 알아보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면 “엄마가 알아본 곳 중에서 골라볼래? 아니면 하루 정도 시간을 더 줄까?”라고 물어본다. 아이가 엄마가 알아본 데서 고른다고 하면 각각의 장단점을 얘기해준 후 고르게 하고, 시간을 더 달라고 하면 그렇게 한다. 단, 학원을 제시할 때는 아주 형편없는 곳은 빼야 한다. 그리고 그중 엄마가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이 있더라도 강요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아이가 학원을 선택한 후에도 “다녀보고 ‘아니다’ 싶거나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해”라고 말해 준다.
아이에게 혼자 공부할 시간을 주었을 때 결과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대부분 ‘반에서 몇 등’ ‘평균 몇 점’이 안 되면 학원에 다니기로 약속한다. 좋은 방법이 아니다. 시험 준비를 제대로 했는지, 안 했는지는 부모보다 아이 자신이 가장 잘 안다. “엄마가 기회를 주기로 해서 지켜봤는데, 공부하는 양이 너무 적더라. 하긴 했어. 그러나 네가 아직은 어려서 시간 조절이 어려울 수도 있어. 차라리 학원처럼 일단 가면 시간에 맞춰 공부를 하게 해주는 곳이 효과적일 수 있어”라고 얘기해준다. 점수나 등수가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공부를 좀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학원에 가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아이가 시험 문제 중 너무 기초적인 것을 틀렸을 때도 “지금 네가 기초가 많이 흔들리는데 기초가 부족한 사람이 혼자 공부하려면 너무 힘들어. 누가 좀 상세히 가르쳐줘야 하거든. 학원에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라고 풀어 가야 한다. 충분히 얘기가 되고, 시간을 들여서 아이를 이해시키고, 아이의 의견을 존중한 다음 수강 과목을 선택하고 학원을 결정해야 한다.
학교나 담임교사는 아이가 선택할 수 없지만 가욋돈을 내서 가는 학원은 충분히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서 고르고, 아이가 존중받는 학원에 다니도록 해주었으면 좋겠다. 또 너무 오랜 시간, 너무 많은 과목을 듣도록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학원은 아이가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을 잘 따라가지 못할 때 부족한 부분을 도와주는 곳이다. 학원 공부가 학교 공부보다 우선이 돼서는 안 된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