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원스토어 웹소설 PD
크리스마스도 핼러윈도 ‘남의 나라 명절’이기는 매한가지다.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아주 우리 일상 깊숙이에 (그 기원인 종교와는 무관하게) 당연하듯 스며들어 있었던 반면 후자는 최근 일반화되고 있다. 무엇보다 크리스마스가 가족, 연인, 이웃 등 관계지향적인 가치를 부각시킨다면 핼러윈은 (최소한 국내에서만큼은) 철저히 개인의 개성 표출과 ‘유희’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그런 핼러윈이 최근에야 환영받게 된 것은 젊은층의 가치관 변화와도 무관하지 않다.
본디 핼러윈은 ‘만성절’(모든 성인의 축일)이라는 기독교 축일의 전야제로, 죽은 이들의 혼을 달래고 악령을 쫓아내기 위해 죽음의 신에게 제의를 올리는 켈트인의 전통 축제 ‘사윈’에서 유래한다. 사람들은 악령이 해를 끼칠까 두려워 자신들을 같은 악령으로 착각하게끔 분장했고 그것이 오늘날 문화로 자리 잡았다. 국내에는 2000년대 초 원어민 강사들이 많은 영어 학원을 시작으로 유치원, 초등학교까지 핼러윈 문화가 퍼졌다. 2000년대에 학교를 다닌 밀레니얼 세대에게 핼러윈이 낯설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재미 그 자체가 목적인 행위에 대해 우리 사회는 유독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다. 각종 의무들을 상기시키며 계획이 없거나 철없는 이로 치부해 죄의식마저 부여한다. 하지만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기 이전에 ‘어차피 행복하자고 사는 인생’ 아니던가. 가끔은 철모르는 어린아이처럼 즐거움 그 자체가 목적인 놀이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그 옛날 소꿉놀이, 파워레인저 놀이를 할 때처럼 잊고 있었던 내면의 천진함이 솟아나 행복의 감도가 높아질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다 자란 아이에게도 놀이의 기회를 주는 핼러윈의 대중화가 참 반갑고 고맙다. 법정 스님은 ‘삶의 본질은 놀이’라 말했다. 삶의 본질인 놀이를 회복해 모두가 조금 더 여유롭고 재미있게 사는 사회를 꿈꾼다.
김지영 원스토어 웹소설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