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110주년 기념 심포지엄 일제강점기 농촌운동가-교육자… 소설 ‘상록수’ 채영신의 실제모델 일제, 불온사상 온상 핑계로 폐쇄
1933년 1월 열린 샘골강습소(천곡학술강습소) 낙성식. 앞줄 오른쪽에서 5번째가 최용신이다. 최용신기념관 제공
정혜정 원광대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교수는 발표문 ‘일제하 사설교육기관과 샘골학원’에서 “일제강점기 최용신의 천곡학술강습소는 크리스천 브나로드 운동으로서 무산자 교육을 위한 계급적 성격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의 안산시 상록구에 1929년 설립된 샘골강습소는 1932년 최용신이 당국의 인가를 받아 천곡학술강습소가 됐다.
정 교수에 따르면 당시 학술강습소와 야학, 개량서당은 일제의 제도권 교육 사이에서 그나마 조선인 본위의 교육을 할 수 있는 틈새공간이었다.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수가 늘어났다. 학술강습소는 농민운동과 연계됐고, 일제강점기 내내 탄압을 받았다.
결국 1933년 4월 총독부는 사상운동의 진원지로 생각되는 사설 학술강습소 800여 곳과 농민조합 1100여 개를 폐쇄하기로 했다. 학술강습소가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사상의 주입’ 혹은 ‘실행소’라고 본 것이다. 최용신 사후 동생 최용경이 사업을 이어가던 천곡학술강습소도 1936년 6월 당국의 폐쇄 명령을 받았다. 당국은 강습소 폐쇄에 ‘교육의 결여’ ‘불완전한 교육’이라는 핑계를 댔다.
정 교수는 “1920년대 교육문화운동은 무산자에게 초점을 둔 인간해방의 맥락을 내포한 것이었고 1930년대 동아일보의 브나로드 운동 역시 빈민, 농민, 민족을 구하는 민족해방, 계급해방의 목표를 담아낸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