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신용불량자 올들어 29% 급증
울산에 사는 정모 씨(29)는 대출금 6000만 원을 7월부터 연체해 ‘신용불량자(금융채무 불이행자)’가 됐다. 5년 전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 아파트 한 채를 사면서 주택담보대출을 1억 원 넘게 받아둔 게 발목을 잡았다. 경기가 나빠지며 정규직으로 다니던 회사에서 나와 일용직을 전전하니 빚 갚을 길이 막혔다. 돈을 마련하려 1억4000만 원에 샀던 아파트를 1억 원에 내놔도 시장이 얼어붙어 팔리질 않는다.
올해 들어 금융권의 신용불량자 수가 26만여 명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대출자 신용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은행권에서만 신용불량자가 30% 가까이 증가했다.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서 중산층까지 연체의 늪에 빠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올해만 신용불량자 26만 명 이상 늘어
금융감독원이 김선동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 들어 9월 말까지 추가로 발생한 신규 신용불량자 수는 26만6059명으로 지난해 말보다 7.6% 늘었다. 특히 은행권에서 28.8% 늘어 가장 큰 증가율을 보였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은행권 이용자들은 신용도가 나쁘지 않은데 신용불량자가 됐다면 경제 상황에 큰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선 당국의 통계에 잡히지 않는 불법 사금융 연체자를 포함하면 실질적인 신용불량자는 이보다 더 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같은 기간 금융권에서 신용불량자들의 신규 연체액(7조7883억 원)도 작년 말보다 30.9% 늘었다. 5년 새 최대 증가폭이다. 신규 연체금액은 2015∼2017년엔 매년 줄다가 지난해부터 증가세로 돌아섰다. 신용정보원은 대출금 100만 원 이상을 3개월 이상 못 갚는 대출자의 연체 기록을 등록하는데 금융권에서는 이들을 신용불량자로 부른다.
부산에서 학원 사업을 하던 40대 후반의 A 씨는 부동산 활황기였던 2015년 6억 원가량의 주택담보대출을 끼고 아파트 한 채를 산 뒤 그곳에서 학원을 했다. 하지만 최근 경기 악화로 수강생이 줄어 생활비조차 마련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올 6월부터 연체가 시작돼 독촉 전화를 받게 됐다. 주택을 사들일 땐 ‘집값이 오르면 집을 팔아 빚을 갚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집값은 떨어지고 추가 대출을 받아야 하는 신세가 됐다.
올해 은행을 중심으로 대출 규제가 강화되자 ‘빚 돌려 막기’가 어려워진 사람들이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는 분석도 있다. 대출 규제로 부동산 가격을 잡으려다가 오히려 연체가 늘었다는 것이다.
○ 고용 악화, 집값 하락에 신불자 탈출 더 어려워져
문제는 일자리가 부족해 연체자들이 빚 갚을 돈을 마련하기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배달업을 하는 문모 씨(58)는 자영업을 하다가 경기 침체로 투자금을 날리고 연체에 빠졌다. 문 씨는 “지역 경기가 워낙 안 좋다 보니 본업을 포기하고 배달이라도 뛰려는 사람이 너무 많다”며 “이 때문에 사람들은 얼마 되지도 않은 배달원 자리조차 찾기 힘들어한다”고 전했다. 신용회복위원회 관계자는 “고령자들은 연체된 지 오래된 분들이 많은데 비정규직이나 일용직으로 근근이 생활하니 빚 갚기가 더욱 어렵다”고 말했다.
김영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의 채무 조정을 돕는 데만 그치지 말고 이들의 소득이 근본적으로 늘어나도록 일자리 대책을 더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은아 achim@donga.com·남건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