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멘붕’딛고 손 모은 SON… ‘정신력+인성’이보다 멋질 순 없다

입력 | 2019-11-08 03:00:00

[손흥민, 한국인 유럽무대 최다골]챔스 즈베즈다전 멀티골 폭발
‘백태클 트라우마’ 완전히 극복… “고메스 위해 더 열심히 뛰었다”
언어장벽 넘고 친화력으로 대성… 축구 전념 위해 결혼도 은퇴 뒤로




영원한 ‘손 하트’ 잉글랜드 토트넘 손흥민이 7일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라이코 미티치 스타디움에서 세르비아츠르베나 즈베즈다와의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조별리그 4차전에서 1-0으로 앞서던 후반 12분 골을 터뜨린 뒤 ‘하트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4분 뒤에도 골을 터뜨려 유럽 한국인 최다골 신기록을 123골로 만든 손흥민은 부모님에 대한 감사 표시로 이 세리머니를 한다고 했다. 베오그라드=AP 뉴시스

손흥민(27·토트넘)의 왼발을 떠난 공이 골망을 흔들었다. 그물을 찢을 듯 강한 슈팅으로 한국인 유럽 통산 최다인 122번째 골을 터뜨린 순간이었다. 토트넘 팬들은 펄쩍펄쩍 뛰며 “소니!”를 연호했다. 팀 동료들은 기쁨을 나누기 위해 손흥민을 향해 달려왔다.

하지만 새 역사의 주인공은 웃지 않았다. 그 대신 두 번이나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숙이는 ‘기도 세리머니’를 했다. 자신의 백태클이 원인이 돼 수술대에 오른 안드레 고메스(에버턴)를 위한 메시지였다. 4일 손흥민은 에버턴과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경기에서 고메스의 돌파를 막기 위해 뒤에서 태클을 했다. 중심을 잃고 넘어진 고메스는 토트넘의 세르주 오리에와 충돌하면서 오른 발목이 골절됐다. 영국 매체 ‘기브미스포츠’는 “손흥민이 득점한 뒤 고메스에게 사과했다. 이런 멋진 남자를 싫어할 사람은 없다”고 보도했다.

7일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토트넘과 츠르베나 즈베즈다(세르비아)의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B조 4차전(4-0 토트넘 승)에서 손흥민은 ‘히스토리 메이커’(역사를 쓴 사람)가 됐다. 전날까지 차범근 전 축구대표팀 감독(66)과 한국인 유럽 통산 최다골(121골) 타이를 이뤘던 손흥민은 멀티골(후반 12분, 후반 16분)을 폭발시키며 통산 123골을 기록했다.

고메스의 부상 이후 정신적으로 흔들렸던 손흥민을 과감히 선발로 투입해 대승을 이끈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토트넘 감독은 “손흥민이 강한 정신력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날 대기록을 자축하는 유럽 통산 123호 골을 넣은 뒤에는 주먹을 불끈 쥐었던 손흥민은 “며칠 동안 대단히 힘든 시간을 보냈다. 고메스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세르비아로 출발하기 전에 고메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쾌유를 빈다. 너와 너의 가족, 그리고 에버턴 선수들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전했다. 고메스가 수술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답장을 보냈다. 하지만 내용은 언급하지 않겠다. 고메스에 대한 존중을 보이기 위해 오늘 더 열심히 뛰었다”고 말했다.

손흥민은 어린 시절부터 축구 선수 출신인 아버지 손웅정 씨(53)와 함께 강원 춘천 공지천에서 개인 훈련을 하며 탄탄한 기본기와 슈팅 능력을 길렀다. 2010∼2011시즌 함부르크(독일)에서 유럽 무대 1군에 데뷔한 이후 이른바 ‘손흥민 존’으로 불리는 페널티박스 좌우측 45도 부근에서의 득점이 많은 것은 아버지와 함께 각각의 위치에서 하루 200번이 넘는 슈팅 훈련을 반복한 결과다.

손흥민의 골 세리머니는 다양하다. 최다골을 기록한 뒤 자신의 백태클로 부상을 당한 안드레 고메스를 위해 ‘기도 세리머니’를 한 것처럼 상황에 따라 의미를 담는다. [1] 지난해 12월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팬이 건넨 태극기를 흔들고 있는 손흥민. “귀중한 태극기이니 잘 보관하겠다”고 말했다. [2] 올해 3월 서울에서 콜롬비아를 상대로 오랜 골 가뭄에서 탈출한 뒤 ‘이제 걱정하지 말라’는 듯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3] 지난해 11월 웨스트햄과의 리그 경기에서 멀티골을 터뜨린 뒤 손가락으로 ‘2’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4] 무릎 부상을 걱정하는 팬들의 목소리에 지금은 잘 볼 수 없게 된 슬라이딩 세리머니. [5]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거함’ 독일을 침몰시키는 쐐기골(2-0 승리)을 넣은 뒤에는 국가대표를 상징하는 유니폼의 대한축구협회 엠블럼에 입을 맞췄다. 동아일보DB

2015년 독일을 떠나 잉글랜드로 향한 것은 손흥민이 공격수로서 한층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점유율을 강조하는 독일 축구와 달리 잉글랜드는 빠른 스피드의 공격을 강조한다. 손흥민은 순간 최고 시속이 34.3km(100m 기록으로 환산하면 10초50)에 달하는 빠른 발을 무기로 EPL 무대에서 2016∼2017시즌부터 매 시즌 20골 가까이 터뜨리는 선수가 됐다.

해외에 진출한 대부분의 한국 선수가 겪는 언어 장벽도 뛰어넘었다. 손흥민은 독일어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손흥민은 “함부르크 시절 하루 2시간씩 독일어 학원을 다녔다. 집에서는 매일 TV로 애니메이션 ‘스펀지밥’을 보며 독일어 공부를 했다”고 말했다. 토트넘으로 이적한 뒤에도 손흥민은 구단이 제공하는 통역을 거절하고 직접 의사소통하는 방식을 택했다.

특유의 친화력도 손흥민의 성공 비결 중 하나다. 젊은 선수가 많은 토트넘에서 손흥민은 동료들과 손바닥과 손등을 부딪친 뒤 춤 동작을 하는 ‘핸드셰이크 세리머니’로 스킨십을 한다. 특이한 것은 상대에 따라 동작이 조금씩 다르다는 점이다. 손흥민은 “우리는 한 팀이며, 경기장 밖에서는 모두 친구다. 늘 새롭고 다른 세리머니를 고민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 금메달로 병역 혜택을 받아 유럽에서 꾸준히 활약할 수 있게 된 손흥민의 득점 행진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힘든 일이 있어도 축구를 하며 이겨낸다”는 그는 선수 생활에 집중하기 위해 은퇴할 때까지 결혼도 안 할 생각이다.

“결혼을 하면 가족이 1순위가 되고, 축구는 다음으로 미뤄진다. 축구는 내게 최우선이며 선수로 활동하는 동안 최고가 되고 싶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