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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이야기]11월을 위한 변명

입력 | 2019-11-09 03:00:00


차상민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

11월은 가을이 깊어가고 낙엽이 지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비나 눈도 잘 내리지 않고, 평균기온은 서울이 6.3도, 제주가 12.1도, 평양이 3.4도로 대체로 쾌적하다. 8일이 입동(立冬)이었지만 아직 큰 추위는 느껴지지 않고 22일 소설(小雪)이 돼서야 찬 기운이 돌 것이다. 활발하게 야외활동하기 좋은 계절이다.

하지만 11월은 특징 없는 달로 여겨진다. 그 흔한 공휴일도 하나 없다. 영어로 11월은 노벰버(November)인데 ‘No’로 시작해서 아무것도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그럴듯하게 들린다. 한 해의 마지막도 장식하지 못하는, 끝에서 두 번째 달이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날이 없다. 굳이 찾자면 막대기 모양의 과자를 연상케 하는 11월 11일에 그 과자 이름을 붙인 날로 부르며 연인끼리 과자를 나눈다. 상업적으로 부추겨진 느낌이 든다고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은 이날을 ‘가래떡 데이’라 바꿔 불러 우리 농산물의 소비를 늘리자고 주장한다. 사실 이날은 농민의 날이기도 하다. 한자 ‘十一’월 ‘十一’일을 합자하면 흙 토(土)가 되어 토월토일(土月土日)이 된다. 흙에서 나서 흙을 벗 삼아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농민들을 기리기 위해 정부는 1997년에 이날을 법정기념일로 지정했다.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비단 농민뿐이겠는가. 기독교의 성경에서는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창세기)”며 모든 인간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환기시킨다.

서양 전통에서 11월은 죽음을 생각하며 망자를 위로하는 위령의 달이기도 하다. ‘죽을 것을 생각하라(Memento Mori)’는 경구는 저주의 말이 아니라 삶과 죽음을 하나로 받아들여 현재의 삶에 더욱 충실하고 감사하라는 지혜를 담은 축언(祝言)이다. 고대 로마의 개선장군은 행진대열의 종자(從者)들에게 이 경구를 외치며 뒤따르게 했다. 고대 켈트족은 10월 31일에 죽음과 유령을 찬양하는 축제를 벌여 한 해의 시작인 11월을 맞이했는데 이것이 핼러윈 축제로 이어지고 있다. 이날은 평소 죽음이나 불운을 떠올리게 하는 유령, 박쥐 등을 즐거움의 상징으로 삼아 축제를 만끽하는데 이는 죽음을 대면함으로써 삶의 긍정적 에너지를 되살리게 하는 것이다.

음력 시월에 해당하는 11월은 예부터 우리 한민족에게도 가장 거룩한 달로 여겨졌다.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이 시기는 (중략) 신과 인간이 함께 즐기게 되는 달로서 열두 달 가운데 으뜸가는 달로 생각하여 상(上)달이라 하였다”라고 기록했다. 고구려, 예, 마한 등에서의 고대 제천의식이 모두 상달에 있었다. 민간무속에서는 마을 동제(洞祭)와 가신제(家神祭)를 상달에 지내며 앞날을 축원한다.

조용한 가운데 새로운 희망과 삶의 생기가 움트는 축복의 달이 지금 우리가 무심히 지내고 있는 11월이다. 주목받지 못하는 이 달에 감사하며 새롭게 다가올 시간에 축복을 기원한다.
 
차상민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