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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최대 관심사, 트럼프는 재선될까?[김정안 기자의 우아한]

입력 | 2019-11-10 12:00:00


“바이든의 에너지가 예전 같지 않은 것은 맞죠. 하지만 다른 대안은 없어요.”

얼마 전 조 바이든 전 부통령 측과 인연이 깊은 한 취재원을 만났습니다. 워싱턴 정계에서 잔뼈가 굵은 터줏대감. 자신의 집에 바이든 전 부통령을 수차례 초대할 만큼 그를 지근거리에서 관찰해온 사람이기도 합니다.

조만간 바이든 전 부통령을 다시 만날 예정이라는 그의 말에, 대화 주제는 자연스레 미 대선으로 흘렀습니다.

“중도를 아우르고 경험을 내세워 트럼프에 대적할 후보는 그가 유일합니다. 좌측에 가 있는 엘리자베스 워렌이 민주당 후보가 된다면 우리는 끝장이에요.”

바이든 카드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도 그는 그러나 신중한 어조였습니다. 올해 77세인 바이든 전 부통령이 예전만 못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순순히 수긍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점을 놓치지 않고 바이든을 ‘Sleepy Joe·졸린 조’라고 자주 비하합니다).

미시건 등 3개의 핵심 지역에서 바이든이 승리하지 않으면 ‘게임 오버’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대선을 1년 남겨 두고 있지만 승리에 대한 자신감과 패기는 솔직히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트럼프-바이든, 트럼프-워런 양자대결 내년 2월 3일 아이오와 코커스 민주당 경선후보 지지율



물론 정치는 흐르는 물과 같습니다. 앞으로 남은 12개월 동안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13일부터 생방송되는 트럼프 탄핵 조사 청문회에서 메가톤급 ‘서프라이즈’가 나오지 말란 법도 없습니다.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운 마이크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의 출마가 현실화되면 향후 변수가 될 수도 있겠지요)

이런 가운데 민주당에서는 사상 첫 아시아계 경선 후보 앤드류 양이 AI와 자동화가 불러온 ‘직업 증발’ 문제를 부각시키며 보편적 기본소득을 공약으로 내세워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 밖에 바이든 외, 엘리자베스 워렌, 버니 샌더스 등 ‘70대 빅3’가 선두권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누구도 버락 오바마 2008년 당시 민주당 경선 후보가 ‘담대한 희망’을 앞세워 불러일으킨 전국구 열풍에 맞먹는 바람몰이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냉정한 진단입니다.

요즘 ‘트럼프 재선 가능성’을 묻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북한 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최대 관심사도 트럼프의 재선 여부이겠지요. 그가 트럼프와의 담판을 이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향후 대미 정책은 물론 핵 협상의 구도를 다시 짜야 할 테니까요.

워싱턴의 관련 기류를 전합니다.

● “트럼프만이 지켜요.”

얼마 전 워싱턴의 한 외교 공관에서 열린 저녁 행사에서 만난 열성 공화당 지지자는 “트럼프 대통령만이 약속을 지키는 유일한 정치인”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더군요. 전통 공화당원인 그에게 기독교 윤리나 도덕성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미국 ‘바이블 벨트(미 중남부에서 동남부 여러 주에 걸쳐 있는 보수적 기독교 복음주의 집중 지역)’ 지지 배경을 묻자 ‘신뢰감’이란 답이 돌아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친이스라엘 정책(이스라엘 수도로 예루살렘 공식 선언 등) 행보는 유대인이 아닌 미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트럼프가 도덕적 리더는 아니더라도 누구도 하지 못했던 친 이스라엘 정책을 실행에 옮겼고 보수 복음주의자들에게 엄청난 호응을 얻고 있다는 것이지요. 기독교인들에게 도덕성만큼 중요한, 신뢰도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 상당수 표심을 파고든지 오래입니다.

루이지애나 유세장 찾은 트럼프 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남부 루이지애나주 먼로에서 주지사 선거 지원 유세를 하고 있다. 루이지애나=AP 뉴시스


지난 5일(현지시간) 4개주에서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를 거둬 트럼프 대통령 재선가도에 경고 등이 켜졌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하지만 전국구 선거와 달리 지방 선거 투표율은 낮은 편이라 민심의 정확한 풍향계라 보긴 어렵습니다. 공화당의 텃밭인 켄터키에서 패한 주지사 선거 또한 워낙 인기 없는 약채 후보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 ‘일사불란’ 공화 vs ‘사분오열’ 민주

“프레임 짜기는 끝났다. 내년 대선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은 '자유(Freedom) vs 사회주의(Socialism)'라는 구도로 싸울 것이다.”

얼마 전 만난 한 의회 소식통은 이렇게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무엇보다 공화당의 조직력은 민주당과의 차이가 있다는 평가도 덧붙였습니다.

이미 공화당 상·하원실 공보관들에게 이미 이 같은 대선 프레인 전략이 전달이 된 상태라는 후문입니다.

소식통은 “공화당 의회 스태프들은 분기별로 모여 조직력과 단결력을 강화한다. 일종의 단합대회 성격인데 민주당에서는 그런 모임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공화당은 대선 프레임 짜기를 이미 끝냈고 실행에 들어간 것이다.”

무소속이지만 그동안 민주당 후보에 표를 던졌다고 밝힌 한 행정부 관계자도 최근 만남에서 이 같은 진단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미국민의 정치성향은 기본적으로 ‘중도우파’다. 그런데 민주당은 갈수록 좌측으로 편향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대로 ‘자유(공화) 대 사회주의(민주)’라는 프레임을 공화당이 가지고 대선을 치른다면 선거인단제도로 대통령을 뽑는 미국에선 트럼프의 재선이 유력할 수밖에 없다.”

이제 딱 1년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 지역구 표심에 민감한 상·하원에서 공화당 의원들이 트럼프 대통령 적극 방어에 나선 점도 주목할 만 합니다.

최근 하원의 탄핵 조사 결의안 표결에선 민주당은 2명의 이탈 표가 있었지만 공화당에서는 탄핵 조사를 일제히 반대하는 단결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해 6월 3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안내로 판문점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북측으로 갔다가 다시 김 위원장과 함께 남측으로 이동하고 있다. 판문점=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때문에 북한이 중장거리 미사일 도발을 해 트럼프 대통령을 망신 주더라도 재선 가도에 타격이 될 만큼은 아니라는 분석입니다. 미국인들의 표심이 북미 협상 결과에 따라 좌지우지 되는 경우는 드문데다 40%대의 트럼프 콘크리트 지지층이나 상하원 지지 기반은 굳건할 것이란 겁니다.

북한은 연말까지 기한을 정해놓고 미국을 향해 “기회의 창이 닫히고 있다”는 식의 압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북한이 도발하더라도 ‘최선을 다했지만 북한이 우릴 속였다’며 제재 압박을 강화하면 된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탄핵 정국과 대선 시즌에 밀려 연내 김정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 쫓기듯 나설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 워싱턴선 힘을 얻고 있는 요즘입니다.

김정안 채널A·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북한학 박사 수료) j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