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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코끼리와 ‘음쓰봉’[동아광장/김석호]

입력 | 2019-11-11 03:00:00

여전히 인권에 무감각한 한국 사회… 공익-사생활의 경계선, 종종 무너져
우리의 삶을 보호할 논의 시작해야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음식물쓰레기 분리수거에 애를 먹는 나에게 함께 사는 딸은 아기코끼리가 먹을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하라고 한다. 오호라! 나 스스로 아기코끼리가 되어 ‘음쓰봉’(음식물쓰레기봉투)에 넣을 수 있는 것을 선별하니 한결 쉬워진 느낌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아기코끼리가 아닌 이상 그 입장을 완벽하게 공감하는 게 불가능하고, 설령 안다고 해도 이를 모두 실천하는 게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다. 고추장과 된장은 아기코끼리가 먹을 수는 있으나 염도가 높아 건강에 해롭다. 사과씨는 그냥 버려도 되지만 복숭아씨는 분쇄하기 전에는 일반 쓰레기다. 생선 가시를 만만히 보고 버렸다가 아기코끼리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 그럼 염도가 높은 신 김치는? 오히려 생각이 더 복잡해지고 결정이 더 어려워졌다. 공감하고 이해한다고 해서 실천이 쉽지 않다.

아기코끼리와 씨름하면서 난 이 문제가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는 시민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 인권을 다루는 우리의 모습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민주주의가 자리 잡으며 우리는 국가인권위원회도 가지게 되었지만, 여전히 인권 관련 애매한 사안에 자주 직면한다. 특히 우리 사회는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타인의 고통에 무심하며, 공격해도 될 위치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가혹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인권 경시의 당사자 또는 피해자가 된다. 공익에 부합한다는 이유로 한 개인의 소중한 삶의 궤적을 왜곡하고 평생을 낙인 속에 살게 할 수도 있는 일들을 반복하며 타인의 권리를 너무 쉽게 간과한다. 이제 듣기만 해도 신물이 올라올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다시 꺼내는 이유다.

난 추호도 조 전 장관 부부가 저질렀을 것으로 의심받는 행위를 변호해 줄 마음이 없다. 다만 어른들이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조 전 장관 자녀의 내밀한 부분을 들여다볼 권한이 있다고 착각했던 건 아닌지 되돌아보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조 전 장관 이전에도 그 자녀의 일생에 부정적 영향을 줄 만한 공격은 정치적 이해에 따라 여야를 가리지 않고 자행됐다. 음쓰봉에 넣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아기코끼리의 건강과 생명을 기준으로 정리해 두고 실천하지 않으면 인간은 언젠가는 그들을 위협한다. 마찬가지로 공익 강화와 인권 보호 간 경계가 모호한 일은 계속되는데,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보호받아야 할 개인의 삶이고 개인이 공동체를 위해 감내해야 하는 희생인지를 확실히 짚어두지 않는다면, 그로 인해 우리의 삶은 언제든지 고통받을 수 있다.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우며 검찰과 언론은 아이의 고등학교 영어 성적까지 공표하고, 명문 사립대는 ‘부정이 밝혀지면 입학을 취소하겠다’는 비겁한 책임 전가만 하는 상황에서 아이의 인권은 어디에 있었을까. 아이가 다녔던 학교에 개인정보를 ‘공식적으로’ 요청하고, 여의치 않으면 이를 다른 경로로 입수해 본인의 동의도 없이 공표하는 국회의원들이 희희낙락하는 사이 그 아이와 우리는 ‘사적 영역 보호’가 마땅히 누려야 하는 권리였는지조차 망각하고 말았다. 사안의 위중함을 판단할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했을 미성년의 미숙한 아이가 부모의 욕심이 만든 결정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무섭다. 우리 모두 미필적 인식에 기대어 인권에 대해 방심하지 않았나 성찰할 필요가 있다. 무신경한 침묵의 관성이 깊어지면 우리의 인권도 그만큼 부식될 것이다. 이번에는 조 전 장관이었지만 다음에는 바로 당신의 자녀가 표적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이참에 공익과 인권 사이에 본원적으로 존재하는 그 모호함에 대해 불편하더라도 대화를 시작하자. 음식물쓰레기를 분리하는 기준처럼, 개인의 기본 권리와 공익의 추구 간 균형에 대한 섬세한 기준을 세워 함께 실천했으면 한다.

내가 최근 접했던 가장 끔찍한 농담은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 국면에서 “검찰이 국민의 인권 보호를 위해 경찰을 계속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말 끔찍했던 것은 검찰의 그 주장이 ‘진심’이었다는 것이다. 시민들도 경찰의 과거 행태에 비추어 그 위험이 실재한다는 점을 안다. 하지만 현대사에서 권력에 의한 인권 말살의 현장에 항상 검찰이 있었다는 점도 잘 안다.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 표적 수사를 한 건 경찰이지만 수사를 지휘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기소를 해 범죄자로 만든 건 검찰이다. 주말마다 서초동과 광화문에 모인 시민들이 정치 현안에 대해서는 서로 대립하나, 검찰의 폭주를 제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한마음이다. 그들이 아기코끼리를 알 리 없기 때문이다. 음쓰봉을 하찮게 여긴다고 불신하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아기코끼리와 음쓰봉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소중한 삶을 맡겨야 하는가.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