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인권에 무감각한 한국 사회… 공익-사생활의 경계선, 종종 무너져 우리의 삶을 보호할 논의 시작해야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아기코끼리와 씨름하면서 난 이 문제가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는 시민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 인권을 다루는 우리의 모습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민주주의가 자리 잡으며 우리는 국가인권위원회도 가지게 되었지만, 여전히 인권 관련 애매한 사안에 자주 직면한다. 특히 우리 사회는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타인의 고통에 무심하며, 공격해도 될 위치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가혹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인권 경시의 당사자 또는 피해자가 된다. 공익에 부합한다는 이유로 한 개인의 소중한 삶의 궤적을 왜곡하고 평생을 낙인 속에 살게 할 수도 있는 일들을 반복하며 타인의 권리를 너무 쉽게 간과한다. 이제 듣기만 해도 신물이 올라올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다시 꺼내는 이유다.
난 추호도 조 전 장관 부부가 저질렀을 것으로 의심받는 행위를 변호해 줄 마음이 없다. 다만 어른들이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조 전 장관 자녀의 내밀한 부분을 들여다볼 권한이 있다고 착각했던 건 아닌지 되돌아보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조 전 장관 이전에도 그 자녀의 일생에 부정적 영향을 줄 만한 공격은 정치적 이해에 따라 여야를 가리지 않고 자행됐다. 음쓰봉에 넣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아기코끼리의 건강과 생명을 기준으로 정리해 두고 실천하지 않으면 인간은 언젠가는 그들을 위협한다. 마찬가지로 공익 강화와 인권 보호 간 경계가 모호한 일은 계속되는데,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보호받아야 할 개인의 삶이고 개인이 공동체를 위해 감내해야 하는 희생인지를 확실히 짚어두지 않는다면, 그로 인해 우리의 삶은 언제든지 고통받을 수 있다.
내가 최근 접했던 가장 끔찍한 농담은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 국면에서 “검찰이 국민의 인권 보호를 위해 경찰을 계속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말 끔찍했던 것은 검찰의 그 주장이 ‘진심’이었다는 것이다. 시민들도 경찰의 과거 행태에 비추어 그 위험이 실재한다는 점을 안다. 하지만 현대사에서 권력에 의한 인권 말살의 현장에 항상 검찰이 있었다는 점도 잘 안다.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 표적 수사를 한 건 경찰이지만 수사를 지휘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기소를 해 범죄자로 만든 건 검찰이다. 주말마다 서초동과 광화문에 모인 시민들이 정치 현안에 대해서는 서로 대립하나, 검찰의 폭주를 제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한마음이다. 그들이 아기코끼리를 알 리 없기 때문이다. 음쓰봉을 하찮게 여긴다고 불신하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아기코끼리와 음쓰봉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소중한 삶을 맡겨야 하는가.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