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과소 대표된 2030세대… 비례대표 50% 청년에게[광화문에서/길진균]

입력 | 2019-11-11 03:00:00


길진균 정치부 차장

“과감한 세대교체가 필요하다. 386도 예외는 아니다.”(초선 A 의원)

“세대교체는 공감하지만 40대는 젊고, 50대는 늙었다는 식으로 무 자르듯 얘기하면 안 된다.”(3선 B 의원)

몇몇 의원들과 식사 자리에서 갑론을박이 오갔다. 요즘 여의도의 주요 화두는 단연 내년 총선 공천, 그중에서도 세대교체다. 범위와 방법을 두고 여러 목소리가 부딪치곤 한다. 의원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21대 국회는 더 젊어져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별 이견을 들어보지 못했다. 현재 20대 국회의원 296명 중에 20대 의원은 한 명도 없다. 30대 의원이 3명 있다. 그나마 더불어민주당 정은혜 의원(36)은 최근 주미 대사로 부임한 이수혁 전 의원의 비례대표직을 승계한 경우다. 50대는 139명, 60대는 117명이다. 70대 이상도 17명이나 된다. 국회의원은 각각의 지역과 계층, 연령 등을 대변한다. 우리나라 국회는 2030세대가 상대적으로 과소 대표된 것이 틀림없다.

정치권엔 경력을 쌓은 인물이 상대적으로 많다지만 우리 국회가 늘 고령층 위주로 움직인 것은 아니다. 27세 나이에 국회의원에 당선된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1971년 44세의 나이로 “빈사 상태에 빠진 민주주의를 회생시키자”며 40대 기수론을 외쳤다. 같은 40대인 김대중(DJ), 이철승 의원이 가세하면서 40대 기수론은 대세가 됐다. ‘구상유취(口尙乳臭·입에서 아직 젖비린내가 난다)’ 소리를 들었지만 YS와 DJ는 기존 정치판의 낡은 껍데기를 깨고 당의 새로운 중심이 됐다. 강삼재 전 의원은 30대에 내리 3선을 했고, 386 의원들 상당수도 2030 때 국회에 입성했다.

미국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등 해외에선 2030에 정치를 시작해 40대에 대권에 도전하는 ‘젊은 리더십’이 낯선 풍경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 정치 현실에선 앞으로 10년이 지나도 그런 리더십을 볼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청년 정치인이 사실상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선거가 다가오면 각 당은 청년들과의 대화, 청년 정책간담회 개최, 20대의 총선기획단 참여 등 여러 명분으로 청년을 ‘소환’하고, 이를 2030의 정치 참여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들의 역할은 늙은 정당의 사진 모델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정치가 젊어져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기후, 환경, 성 평등 등 급변하는 국내외의 이슈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2030 전문가들, 구습에 얽매이지 않는 젊은 정치는 정치 개혁의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 기업 및 로비스트의 후원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미국 뉴욕의 30세 하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44세 앤드루 양 같은 정치인들이 한국에서도 나올 수 있다. 한두 명의 구색 맞추기식 영입이 아니라 수십 명의 2030세대 의원들이 함께 국회에서 바람을 일으킨다면 가능한 일이다. 국민 의견을 수렴해 대표자를 정하는 건 정당의 몫이다. 내년 4·15총선은 2000년에 태어난 21세기의 청년이 첫 투표를 하는 선거다. 새 정치를 위해서는 가끔 파격이 필요하다. 각 당이 비례대표 의원을 남성과 여성에게 각각 50%씩 할당하면서 세대 기준을 신설해 2030세대에게 50%를 할당하는 것은 어떨까.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