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알다시피 단풍 색깔은 겨울이 오는 걸 감지한 나무가 잎으로 보내는 영양분과 수분을 차단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안토시아닌과 카로티노이드라는 두 색소가 잎 속에 있는데 안토시아닌이 많으면 붉은색이 나타나고, 카로티노이드가 많으면 노란색이 된다. 그러니까 유럽의 나무에는 대체로 안토시아닌이 없다는 얘기다.
2009년 핀란드 쿠오피오대 연구에 따르면 안토시아닌은 3500만 년 전쯤 나무들이 해충을 퇴치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자연에서 붉은색은 독성이 있다는 신호인 데다 이런 물질을 만들면 영양분이 적어져 진딧물 같은 녀석들에게 썩 좋은 먹잇감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 까닭이다. 그러니까 이때부터 울긋불긋한 단풍이 시작된 것이다. 실제로 진딧물을 대상으로 실험해 보니 녀석들은 붉은색보다 노란색 나무를 6배나 더 선호했다(영국 임피리얼대 연구). 왜 유럽 나무들은 이렇게 중요한 안토시아닌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해마다 이쯤 되면 사람들의 얼굴과 행동에 어떤 색깔이 나타난다. 올 한 해 동안 이룬 성과가 누군가에게는 밝은 표정으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어두운 표정으로 나타난다. 삶의 가을을 맞은 이들에게서도 마찬가지다. 그가 젊음을 어떻게 보냈는지 알 수 있는 색깔이 그의 온몸에 배어 있다. 나무가 잎으로 색깔을 표현한다면, 우리는 얼굴과 행동으로, 더 나아가 자신의 생각이나 작품 같은 것으로 그렇게 한다. 어떤 시간과 노력을 들였는지가 그에 맞는 색깔이 되어 나타난다. 황동규 시인이 시집 ‘사는 기쁨’에서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의 때깔로 단풍 들거나 들고 있는 사람들이 아름답다.’ 그렇다. 사람은 자신의 때깔로 단풍이 들어야 아름답다. 오늘 우리가 보내는 하루하루가 우리 자신의 때깔을 만든다. 가을이 깊어간다. 나는 어떤 때깔을 만들고 있을까?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