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이코노미 시대 변해야 살아남는다] 금리-물가-성장률 ‘제로’에 근접… 글로벌 은행들 수익 악화로 휘청 도이체방크-HSBC 등 감원 태풍
2017년까지 덴마크 코펜하겐 시내에 있던 대형 은행 노르데아 지점(왼쪽 사진). 지금은 그 자리에 귀금속 거래소가 들어서 있다. 한쪽에 남아 있는 현금인출기만이 한때 은행이 이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krak 화면 캡쳐·코펜하겐=김자현 기자
“여기는 2년 전까지 핀란드계 대형은행 노르데아가 있던 자리죠. 은행들이 지점을 줄이면서 매물이 많이 나왔는데 금고 설비가 잘돼 있어서 이곳을 택했습니다.”
지난달 31일 덴마크 코펜하겐 도심에 있는 귀금속 거래소 ‘뉘포르투나’. 여기서 만난 미아 힌리크 대표는 원래 은행이 있던 시내 노른자위 자리에 새 매장을 낼 수 있었던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덴마크 최대 귀금속 거래소인 이곳은 은행과 달리 영업 시간에도 창에 블라인드가 굳게 쳐져 있었다. 고액 자산가들을 보호하기 위한 배려다. 철저히 예약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벨을 누른 후 신원을 확인한 뒤에야 입장할 수 있다. 그럼에도 사무실엔 상담 예약을 원하는 전화벨이 쉴 틈 없이 울렸다.
세계 금융시장을 호령했던 글로벌 은행들이 수익성 악화로 휘청거리면서 이젠 금 거래소나 핀테크 기업에 자리를 내주는 일까지 생기고 있다. 금리와 물가, 성장률 등 주요 경제지표가 제로(0)에 수렴하는 ‘제로이코노미 시대’에 진입하며 나타난 단면이다. 컨설팅 기업인 맥킨지앤드컴퍼니는 최근 보고서에서 “세계 은행의 3분의 1은 획기적으로 혁신하지 못하면 머지않아 다른 은행에 먹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로이코노미는 비단 금융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경제 전반이 일본식 장기 불황에 빠지는 ‘저패니피케이션(일본화)’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 상당수 국가의 지방도시에서는 인구 유출로 빈집과 폐교가 늘고, 빈곤 노인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노후 불안에 시달리는 투자자들은 현금을 움켜쥐고 있거나 해외·대안투자에 눈을 돌리고 있다.
세계 각국은 제로이코노미 현상을 ‘가보지 않은 길’ ‘도전의 시간’으로 보고 생존 경쟁에 돌입했다. 금융사들은 고객에게 이자를 주는 대신 오히려 돈을 보관해주는 대가로 수수료를 받고, 경쟁사와 손잡고 ‘공동 점포’를 연다. 미국 금융권에선 디지털 플랫폼에서 소비자가 모든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아마존화(化)’가 강조되고 있다. 영국 프랑스는 현행 연금 체제로는 저성장기 고령 인구를 부양할 수 없어 연금 개혁을 진행 중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제로이코노미에 먼저 들어선 나라들을 찾아 현황을 점검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각국의 노력과 해법을 살펴봤다.
특별취재팀
▽팀장 유재동 경제부 차장 jarrett@donga.com
▽경제부 조은아, 도쿄·사이타마=장윤정 기자,
런던·리버풀=김형민, 프랑크푸르트=남건우,
코펜하겐·스톡홀름=김자현
▽특파원 뉴욕=박용, 파리=김윤종, 베이징=윤완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