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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로이스도 반한 ‘한화에어로’ 기술

입력 | 2019-11-12 03:00:00

항공엔진 부품 1조2000억원 계약




5일(현지 시간) 영국 더비에 있는 롤스로이스 항공엔진 공장에서 에어버스 A330, 보잉 787드림라이너 등 주력 기종에 탑재되는 ‘트렌트 엔진’을 조립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 엔진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 10종을 2021년부터 2045년까지 납품하는 계약을 이날 체결했다. 롤스로이스 제공

영국 런던에서 북쪽으로 차를 3시간 달리면 도착하는 더비는 인구가 30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중소도시다. 양 떼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 한가한 시골이지만 이곳 주민들은 자부심이 대단하다.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플랫앤드휘트니(P&W)와 함께 글로벌 항공기 엔진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롤스로이스의 최첨단 항공엔진 공장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1884년 창업한 롤스로이스는 세계적인 프리미엄 카 메이커로 잘 알려져 있지만 1973년 자동차 사업을 매각한 뒤 현재는 항공기 엔진 제조에 전념하고 있다. 이곳 더비 공장에서 만든 롤스로이스의 ‘트렌트 엔진’은 에어버스의 A330, 보잉의 787드림라이너 등 35개 비행기 기종의 심장이다.

첨단 기술력 못지않게 부품 공급업체를 까다롭게 관리하기로 유명한 롤스로이스가 5일(현지 시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10억 달러(약 1조2000억 원 상당)의 25년짜리 엔진 부품 공급 계약을 맺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최근 30년 동안 롤스로이스에 엔진 케이스 등을 주로 납품해 왔는데 대부분 단기 계약이었다. 신현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사장은 “롤스로이스가 납품업체와 장기 공급 계약을 맺은 것은 그만큼 우리 기술력을 신뢰한다는 의미”라며 “앞으로 롤스로이스와의 협력은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5일(현지 시간) 영국 롤스로이스 더비공장에서 신현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사장(오른쪽)과 앤디 그리즐리 롤스로이스 터빈사업부 부사장이 수주 계약서에 서명 후 찍은 기념사진. 롤스로이스 제공

이날 찾은 롤스로이스 더비 4공장에서는 높이 2m, 길이 4m가 넘는 초대형 트렌트900 엔진을 뉘였다 세웠다 하며 조립이 한창이었다. 통상 항공기 엔진에는 2만 종이 넘는 부품이 들어가는데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이번에 공급하기로 한 부품은 엔진의 연소와 직접 관련 있는 고압터빈 디스크 등 10종이다. 사람으로 치면 심장과 연결되는 동맥이나 심장을 뛰게 하는 역할을 하는 핵심 부품이다. 롤스로이스 인스톨레이션 사업부 워릭 매슈스 총괄부사장은 “한화가 만든 엔진 연소기 케이스, 내부 구조대, 일체형 로터 등 주요 부품이 이 엔진에 조립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백 t에 이르는 비행기를 띄우는 항공기 엔진은 그만큼 복잡하고 정교해야 할 뿐만 아니라 수백 도의 고온과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가혹한 환경을 견뎌야 한다. 부품 하나만 이상이 생겨도 초대형 인명 피해로 직결되기 때문에 엔진 부품을 납품할 수 있기까지는 작은 부품 거래를 하나씩 터가면서 기술력과 안전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실제로 롤스로이스는 세계 700여 개 항공 부품업체와 거래하는데 이 중에서도 터빈 엔진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은 엄선한 10여 개 톱클래스 업체와만 거래한다.

구조물-트랜스미션 사업부문의 노르베르트 아른트 총괄부사장은 “롤스로이스의 파트너사들은 납기일, 품질, 비용 대비 효율 등을 점수로 환산해 평가받는다”면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30년 넘게 거래하면서 잠재성을 충분히 증명했고 이제는 롤스로이스와 미래를 함께할 동반자가 됐다”고 했다. 실제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롤스로이스가 지정하는 최고 파트너 상(Best Supplier Award)을 받기도 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일찌감치 사업전략을 고부가가치 항공 엔진 부품 사업으로 정했다. 미국과 영국이 양분하고 있는 민간 항공기 엔진 제조에 직접 뛰어들기보다 이들 글로벌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통해 파이를 같이 키우는 실리를 택했다.

실제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최근 5년 동안 GE, P&W와도 엔진부품 장기 공급 계약을 잇따라 따내며 약 198억 달러(약 23조 원)의 수주 실적을 올렸다. 2015년에는 P&W와 엔진을 공동 설계하고 제작하는 국제공동개발(RSP) 사업 파트너로도 참여했다. RSP는 단순 부품 공급이 아니라 차세대 엔진 개발에 함께 참여해 비용과 수익을 참여 지분에 따라 나누는 방식으로 기술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이처럼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미래를 내다본 선제적 투자 덕분이기도 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말 가동을 시작한 베트남 공장에 이어 지난달 베트남 제2공장을 착공했다. 또 6월에는 미국 항공엔진 부품업체인 이닥(EDAC)을 인수하기도 했다. 신 사장은 “최근 4, 5년의 집중적인 투자가 결실을 보고 있다”며 “민간 항공기 시장의 지속적인 성장에 힘입어 투자 성과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더비=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