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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 택시 안잡힌다고 ‘음주 킥보드’ 쌩쌩… 정말 큰일납니다

입력 | 2019-11-12 03:00:00


9일 오후 11시 45분경. 서울 강남구 논현동 먹자골목의 한 술집 앞. 이 가게를 막 나선 술에 취한 30대 남성에게 일행들은 “택시를 타고 가라”고 했다. 하지만 이 남성은 술집 인근에 세워져 있던 전동킥보드를 타고 골목길에서 사라졌다. 헬멧도 쓰지 않은 채였다.

본보 취재팀이 4일과 9일 각각 오후 11시부터 오전 1시까지 서울지하철 7호선 논현역과 3호선 신사역 인근의 술집 주변을 둘러본 결과 술을 마신 채 전동킥보드를 빌려 타는 사람들을 여러 명 볼 수 있었다. 4일 밤 12시 무렵, 논현동 먹자골목에서는 얼굴빛이 불콰해질 정도로 술을 마신 이모 씨(31)가 전동킥보드에 올랐다. 이 씨는 “집이 압구정동인데 걸어가기엔 멀고 택시는 잘 안 잡혀 전동킥보드를 타고 간다”며 “대여료 3000원 정도면 집까지 갈 수 있어서 이 동네에서 술을 마실 땐 종종 이용한다”고 했다.

신사역 인근의 가로수길에서 만난 또 다른 전동킥보드 이용자 김모 씨(26)는 “택시가 잘 잡히는 곳까지만 타고 가서 거기서부터는 택시로 (경기 성남시) 분당 집까지 갈 것”이라며 “술을 마신 뒤 전동킥보드를 몰면 재미도 있고 술도 깬다”고 말했다. 논현역 인근 도로에서는 하나의 전동킥보드에 2명이 함께 타고 아슬아슬하게 달리는 경우도 있었다.

운전면허나 원동기면허가 있어야 몰 수 있는 전동킥보드는 스쿠터, 전동자전거와 마찬가지로 도로교통법상 ‘원동기장치 자전거’로 분류돼 있어 음주운전은 처벌 대상이다. 운전 중 헬멧을 착용하지 않거나 신호 위반, 인도 주행 등의 경우에도 오토바이와 같은 액수의 범칙금이 부과된다.

하지만 술을 마신 뒤 전동킥보드를 모는 운전자들이 적지 않고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도 잦다. 지난달 31일 오후 9시 50분경 신사동에서는 미성년자 임모 군(18)이 음주 상태로 전동킥보드를 몰고 인도로 달리던 중 보행자를 피하려다 차도에 주차돼 있던 승용차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앞서 지난달 22일 오전 2시 반경엔 홍모 씨(40)가 논현동의 한 골목길 편의점 앞에서 면허 취소 수준인 혈중알코올농도 0.112% 상태로 전동킥보드를 운전하다 택시를 들이받았다. 홍 씨는 무면허 운전자였다. 이달 5일 오후 10시 50분경엔 강남구 역삼동에서 만취 수준인 혈중알코올농도 0.145% 상태로 전동킥보드를 몰던 남성 운전자가 경찰 단속에 적발되기도 했다.

경찰은 술자리가 많아지는 연말이 다가오면서 택시를 잡기가 힘든 강남 지역 일대에서 음주 상태에서 전동킥보드를 모는 운전자들이 늘어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강남 일대에만 10곳이 넘는 전동킥보드 대여 업체가 있는데 대부분이 대여 서비스를 24시간 내내 제공한다. 이용자들은 회원 가입 후 간단한 인증 과정만 거치면 밤늦은 시간에도 전동킥보드를 빌려 탈 수 있다.

전동킥보드 교통사고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에 따르면 삼성화재에 접수된 전동킥보드 교통사고는 2016년 49건에서 2017년 181건, 지난해 258건으로 늘었다. 삼성화재에만 접수된 사고 수치라는 것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전동킥보드 교통사고 통계를 따로 집계하지는 않는다.

전제호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심야시간에 전동킥보드 운행을 제한하고 있다”며 “전동킥보드 대여 시간 제한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성희 chef@donga.com·윤다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