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시작은 루틴(일상)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다. 프리랜서 영상제작자인 나는 친구 회사에서 두 달간 일하기로 했다. 계약 전엔 ‘매일 출근이라니 끔찍하다’라고 하고 싶었는데 막상 출근하니 좋은 점이 더 많았다. 일단 회사는 가면 반은 성공이다. 적당히 감시하는 자도 있고 해야 할 업무도 있으니 일만 하면 된다. 나보다 훌륭한 사람들과 일하니 배울 점도 많았다. 무엇보다 퇴근하면 더 일을 안 해도 된다는 것. 하지만 프리랜서는 아니다. 가장 큰 비극은 나 자신과 일해야 하는 건데, 놀고 싶은 나를 설득해 책상 앞에 앉혀 ‘셀프 멱살’을 잡는 게 얼마나 큰 에너지가 드는 일인지 깨달았다. 동시에 겁도 났다. 팀으로 일하는 즐거움을 알아버렸는데 두 달 후 다시 혼자가 되면 어떡하지? 그때를 대비해야 했다. 무언가 하나를 꾸준히 하다 보면 그것이 나를 지켜주지 않을까.
그래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첫날 죽을 것 같아 더는 못 하겠다며 시계를 보니 5분이 지나 있었다. 저질체력을 새삼 확인하고 가까스로 3km를 달린 뒤 결심했다. 매일 이만큼만 뛰자고. 다음 날 같은 코스를 달렸는데 어제보다 훨씬 덜 힘들었다. 하루 했다고 몸이 이렇게 기억하다니. 내일이 기다려졌다.
달리는 내내, 힘든 순간마다, 나는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되는 상상을 했다. 나보다 멋지고, 대단하고, 훌륭한 사람들을. 만약 그러지 않고 ‘나처럼 해보자, 나답게 뛰어 봐’ 했다면 벌써 포기했을 거다. 그런 생각들을 마주하니 머쓱해졌다. 달리기는 내가 고작 나인 걸 받아들이는 과정 같다. 다른 사람이 되겠다는 야망은 이제 그만. 나로 잘 살아보자. 매일 조금씩 내 몸을 단련시키면서.
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