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처럼 살던 중년여성 윤희, 첫사랑 찾는 과정서 자기내면 만나
희생치러낸 중년들 인생 즐길 자격
36년 차 배우 김희애는 “예전에는 촬영지에서 단풍잎이 쏟아지면 ‘이 좋은 계절에 뭐하는 거지?’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나 연기하라고 멍석을 깔아주나 보다. 정말 행복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리틀빅픽쳐스 제공
첫사랑으로부터 온 편지를 받은 윤희(김희애)가 딸 새봄(김소혜)과 함께 설원으로 떠나는 여정을 그린 영화 ‘윤희에게’(감독 임대형)의 시나리오에는 여백이 많다. 이 영화를 한 편의 시로 완성시킨 것은 오랜 세월 묻어둔 감정을 따라 조심스레 흔들리는 배우 김희애의 눈빛이다.
올해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된 이 영화는 14일 개봉한다. 11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에서 만난 김희애는 “어떤 사랑이라도 괜찮다고 토닥여주는 느낌이라는 시사 후기를 보고 너무 기뻤다”며 말문을 열었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듯 그림자처럼 살던 윤희는 첫사랑을 찾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진짜 모습과 대면하고 한발 더 나아간다.
“한번 돌아보세요. 자기 자신의 시간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요. 특히 중년 이후에는 자신을 위해서 오롯이 집중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희생을 치러내 충분히 인생을 즐길 자격이 있는 ‘윤희’처럼요. 더 일찍 깨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요.”
김희애도 나이가 들며 배우나 엄마가 아니라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한다. 그는 “어릴 때는 친구를 안 만나면 외롭고 우울했는데 요즘은 만나면 우울하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나이가 들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충만하게 느껴져요. 그 속에서 행복감을 맛보는 것 같아요.”
‘윤희’에 몰입하기 위해 그는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책과 영화를 보며 담금질을 했다. 그 덕에 중압감 없이 배역에 몰입할 수 있었다. ‘조커’의 호아킨 피닉스나 ‘쓰리 빌보드’의 샘 록웰 등 최근 흠뻑 빠져 본 영화와 배우들을 열거할 때는 소녀처럼 설레는 표정이 묻어났다.
“나문희 김혜자 선생님을 보면서 안심하기도 해요. 제가 윗세대와 아랫세대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주신다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최근 여성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가 늘어나는 데 대해 그는 “작은 소용돌이가 많이 일어나서 자리를 잡고 다른 시도가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