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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돼지핏물 흐르는 하천, ‘무조건 살처분’이 초래한 재난

입력 | 2019-11-13 00:00:00


경기 연천군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산을 막기 위해 살(殺)처분한 돼지 수만 마리의 침출수가 임진강 지류를 오염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방역당국이 감염사례가 1건이라도 확인된 지자체의 모든 돼지를 살처분하면서도 매몰지 확보 등 처리 준비는 부실했던 탓이다. 핏물로 붉어진 강물과 산처럼 쌓인 돼지 사체들의 모습은 무차별 살처분 정책의 폐해를 보여준다.

방역당국은 10, 11일 살처분을 서두르면서 돼지 사체를 군부대 공터에 임시로 모아뒀는데 비가 내리면서 핏물이 인근 하천으로 흘러들어갔다고 설명했다. 사고 지점에서 불과 수 km 떨어진 곳에는 임진강 상수원이 있다. 환경부는 돼지들이 예방 차원에서 살처분된 것이므로 ASF 바이러스가 유출될 우려는 없고 침출수는 일반 유기물이므로 정수 과정을 거치면 수돗물 공급에 차질이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방치된 가축 사체의 침출수가 상수원으로 유입될지 모를 상황을 지켜보는 주민들의 걱정과 충격을 도외시한, 안이한 대처가 아닐 수 없다.

ASF는 치사율이 100%인 데다 예방이 어렵다는 점에서 일정한 범위 내 살처분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매몰처리 대책도 없이, 행정구역 내의 모든 돼지를 죽이는 데 급급한 것은 안이하고 과도한 대응이라는 지적이 진작부터 제기돼 왔다. 이는 과거 조류인플루엔자(AI)나 구제역 등 가축 전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반복돼온 광경이기도 하다. 가축전염병만 터지면 ‘예방적 살처분’에 주로 의존해왔기 때문이다. 가령 구제역의 경우 예방접종으로 충분히 관리가 가능한 전염병이지만 축산국가로서 ‘청정국’ 지위를 중시하느라 살처분을 택해 적잖은 비판이 일었다.

대규모 살처분에 의존하다시피 해온 기존 방역체계를 재검토할 때가 됐다. 살처분 위주의 대책은 가축의 생명권은 물론이고 실효성도 의문이다. 막대한 예산이 들고 축산업의 기반을 위태롭게 한다. 차제에 감염병 관리 매뉴얼을 만들어 유사 사례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