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애진 경제부 기자
경기 하강기 재정 투입을 늘려 경기 회복의 마중물로 삼아야 한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부가 내년에 513조5000억 원 규모의 슈퍼 예산을 편성한 것은 추락하는 성장을 떠받쳐야 한다는 위기감의 발로이기도 하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한국에 재정을 더 풀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당장의 성장률 수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재정을 마구 당겨쓰는 것은 미래세대에 죄를 짓는 일이다. 지금은 결론이 나지 않는 재정건전성 논란에 얽매이기보다는 기업 활력을 높여 세금을 걷을 수 있는 토대를 넓혀야 할 때다. 현 정부는 2년 반 동안 법인세와 종합소득세 최고세율을 인상해 대기업과 고가 주택 보유자에게서 세금을 더 걷었지만 지속가능한 세수 확대방안은 아니다. 구조 개혁과 규제 완화로 기업이 미래 성장동력을 키우고 그 결과 이익이 늘고 세금도 더 낼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근본 대책이다.
기초연금을 확대하는 등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데도 재정을 써야 한다. 그러나 복지지출로 단기적 성과를 낼 순 있어도 민간의 활력을 끌어올리는 건 한계가 있다. 과도한 복지지출 때문에 경직성이 큰 의무지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재량껏 돈을 쓸 수 있는 융통성이 줄어드는 부작용도 생길 수 있다. 한 경제학자는 “IMF는 재정을 풀면서 규제개혁도 같이 하라고 했는데 정부가 규제 완화, 혁신 없이 재정만 늘린다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이라고 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1일 “재정 확대는 낭비가 아니라 선제적 투자”라며 “재정을 마중물 삼아 민간이 성장을 견인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내년 예산안에 성장잠재력을 높일 사업은 잘 보이지 않는다. 국회와 정부는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혈세를 정말 제대로 쓸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주애진 경제부 기자 ja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