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금리 물가 성장률이 모두 0에 수렴하는 ‘제로 이코노미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고성장에 인플레이션만 걱정하던 한국 경제가 이제는 거꾸로 저물가가 장기간 지속되는 디플레이션 공포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은행이 아무리 금리를 낮춰도 기업이 돈을 빌려가지 않는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경제 시스템을 맞게 됐다. 주요 선진국들에서 ‘제로 이코노미의 덫’이라는 새로운 경제 환경이 이미 자리 잡았는데 한국이 그 전철을 밟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금리를 역대 최저치인 1.25%로 내린 것은 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 8월의 소비자 물가는 전년 대비 0%였고, 9월은 마이너스 0.4%였다. 마이너스 물가는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올해 3분기 경제성장률은 0.4%대로 집계됐다. 연간으로는 1%대 성장이 예상된다. 독일 스위스 스웨덴 등 유럽 국가와 일본은 이미 마이너스 금리 시대로 은행에 돈을 맡기면 이자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관료를 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저금리로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은행 보험 같은 금융회사들이다. 글로벌 컨설팅회사 맥킨지앤드컴퍼니는 “세계 은행의 3분의 1은 획기적으로 혁신하지 못하면 머잖아 다른 은행에 먹힐 것”이라고 경고한다. 현재 한국의 대표적 시중은행들은 호황을 맞고 있지만 맥킨지의 경고가 남의 일이 아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약 600조 원의 가계대출 시한폭탄을 안고 제로 금리 시대로 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보험사들은 돈을 굴릴 곳이 마땅치 않고 역마진에 걸려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대형 보험사의 줄도산을 경험했던 일본이 강 건너 불이 아닌 상황이다. 개인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은퇴 후 안정적 이자 수입을 기대했던 금리생활자들은 직격탄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