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대통령이 된 닉슨은 이런 불확실성 조장 전략을 소련과 북베트남을 상대로 십분 활용했다. 특히 1973년 하노이 폭격 이후 포로들이 석방되자 일기에 이렇게 썼다. “북베트남인들은 정말로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절대로, 반드시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당시 닉슨의 과제는 최대한 체면을 살리며 베트남에서 빠져나오는 것이었다. 즉, 휴전 협상을 하면서도 북폭을 확대해 굴욕적 철군이 아님을 보여주려는 고육책이었다.
▷닉슨의 전략은 북한의 잇단 도발로 한반도 전쟁 위기설이 돌던 재작년 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대북 대응책으로 부활했다. 니키 헤일리 전 주유엔 미국대사는 최근 발간한 회고록에서 트럼프가 초강력 대북제재 결의를 위해 유엔 회원국들을 이렇게 압박하라고 했다고 썼다. “그들에게 (군사공격을 포함한)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고 전하라. 그들이 나를 미쳤다고 생각하게 하라.” 또 북한 김정은에 대해선 “미치광이를 다루는 위험에 대해서라면 문제는 그쪽이지 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닉슨과 트럼프의 미치광이 전략 배경에는 미국의 고립주의적 퇴각이라는 흐름이 있다. 베트남 수렁에서 빠져나가며 지역 안보는 각국이 해결하라는 ‘닉슨 독트린’이나 더는 세계의 경찰이길 거부하며 방위비 분담을 요구하는 ‘미국 우선주의’는 결국 초강대국도 이젠 힘에 부친다고 실토하기를 주저하는 역설적 으름장이다. 여기엔 두 사람의 독특한 성향도 한몫했다. 홀로 있기를 좋아했고 알코올의존증과 우울증에 시달렸던 닉슨이고, 변덕과 기행으로 진짜 미친 건지 그런 척하는 건지 헷갈리게 하는 트럼프이니.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