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 Sun Kil Moon ‘Duk Koo Kim’(2003년)
“아, 나 마크 코즐렉 진짜 좋아하는데…. 혹시 코즐렉이 AC/DC 노래 커버한 앨범 들어봤어?”
며칠 전 음악가 S, 기획자 Y와 차를 타고 가다 오랜만에 그 이름을 들었다. “난 늘 메탈리카보다 AC/DC가 좋았다”는 Y의 말을 S가 받은 것이다.
‘코즐렉과 AC/DC라니…. 이 무슨 해괴한 조합인가.’
AC/DC는 호주의 하드록 밴드. 코즐렉은 이른바 슬로코어·새드코어 장르의 기수. 밴드 ‘레드 하우스 페인터스’ 시절부터 이어온, 한없이 느리고 음울한 음악 분위기를 그는 새 밴드 ‘선 킬 문(Sun Kil Moon·사진)’까지 이어갔다.
‘어젯밤 옛날 권투경기 영상을 봤지/레이 맨시니와 김득구/서울에서 온 그는 잘 버텼지만/일격이 그를 덮쳤어’(‘Duk Koo Kim’)
노래의 도입부. 드럼의 2박, 4박에 맞춰 느릿느릿 출렁거리는 전기기타 화음은 마치 불길하게 일렁이는 회색 심연 같다. 권투 하면 영화 ‘록키’에 실린 ‘Eye of the Tiger’처럼 공격적인 사운드와 비트가 떠오르지만, 코즐렉의 세계에서 이 스포츠는 거의 슬로모션이다.
‘절대 모르지/어떤 날이 널 데려갈지… 다시 한 번 와줘, 내 사랑’
곡을 쓸 무렵 코즐렉은 연인을 암으로 잃고 깊은 두려움과 고독에 빠졌다고 한다. 14회전에 쓰러져 사망한 김득구를 기리며 곡을 14분 조금 넘는 길이로 완성했다. 김 씨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호화 호텔 특설 링에서 잠들었다. 이달 18일이 그의 37주기다.
오랜만에 ‘Duk Koo Kim’을 들었다. 후두두둑. 빗줄기가 버스 차창 밖을 끝없이 두드렸다. 꿈의 우물로 빨려 들어갔다. 쏟아지는 주먹에 잠들어간 김득구처럼.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