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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2205개나 되는 CEO 형사처벌 조항, 이런 나라가 또 있을까

입력 | 2019-11-15 00:00:00


직원들이 실수로 잘못을 해도 기업 최고경영자(CEO)까지 처벌하는 법령들이 기업들의 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 내년에 300인 미만 기업까지 확대되는 주 52시간 근무제가 대표적이다. 이를 위반하면 대표이사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CEO도 모르게 직원이 주 52시간을 위반하기라도 하면 CEO가 감옥에 갈 판이다. 7월부터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도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준 회사의 사업주에 대해 처벌을 하게 돼 있지만 정작 괴롭힘 가해자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은 없다.

실무자의 잘못에 대해 법인과 CEO까지 처벌하는 법은 점점 늘고 있다. 하도급업체 직원이 사망해도 원청업체 대표가 징역형을 받는 산업안전보건법,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 등이 새로 강화된 법들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경제 관련 법령 285개를 전수 조사해 보니 형사처벌 항목이 2657개로 20년 전보다 42% 증가했다. 이 중 2205개는 범죄를 저지른 직원뿐 아니라 법인과 대표이사가 함께 처벌받는다.

경영자는 기업의 법령 준수를 총괄적으로 책임져야 하며, 실무진에서 자율적으로 준법을 하기보다 윗선의 눈치를 봐야 하는 한국의 기업문화를 바꾸는 일도 필요하다. 하지만 경영자에게 지나친 형벌 규정을 들이대면 공격적으로 시장을 개척하고 혁신해야 할 기업들의 활동이 위축된다.

무엇보다 시대가 많이 변했는데도 수십 년 전과 똑같은 규제는 하루빨리 손봐야 한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이른바 이철희 장영자 사건을 계기로 1983년 만들어졌다. 이 법의 3조는 1990년 배임 횡령 등에 대해 기준 이득액 5억 원 이상을 가중 처벌하는 것으로 개정된 후 29년간 바뀌지 않았다. 50억 원 이상이면 최고 무기징역을 받을 만큼 강한 처벌을 받는다. 대기업들이 수조 원을 투자하는 시대에 30년 전 기준 액수로 가중처벌을 하는 것이다. 구글 페이스북 등 글로벌 기업들엔 해당되지 않는 규제를 국내 기업에만 적용하는 역차별도 심각하다.

정부는 혁신성장과 규제개혁을 외치지만 현장에서는 규제가 더 늘어난다고 아우성이다. 갈수록 추락하는 경제 성장률을 높이려면 기업들의 투자 확대가 필수적이다. 재정을 아무리 풀어도 민간 투자가 살아나지 않으면 안 된다. 기업들의 투자 의욕을 북돋우려면 기업과 CEO를 옥죄는 과잉 규제와 처벌 조항들부터 손질해야 할 것이다.